사는이야기

[구속 10주년] 첫번째 이야기 - Intro -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6. 19.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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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15일 제대를 약 한달여를 남겨둔 날
외박 신고를 하기위해 중대본부로 갔던 나는 근무지원단장(대령) 사무실에서 국군기무사령부 군수사관들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고 기무사 서울지구 분소에서 조사를 받고 수도방위사령부 영창에 구속수감되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때 생생했던 것들. 아마 평생가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퇴색되고 바래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딘가에 적어두지 않으면 그때 그 일들 그 감정들이 더이상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부쩍 많아진 요즘
10년후가 되기도 하는 2006년 올해에 틈나는 대로 적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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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시작하다.


1996년 1월 15일

2박3일 외출의 시작되는 날.
막내 남동생과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고 수영이와 오후에 만나기로 했고 민혜랑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

외박신고를 하러 중대장실에 갔더니 중대장이 나를 데리고 근무지원단장님이 부르신다며 단장님실로 가자고 한다.
머리속에 많은 생각이 든다. 왜일까? '포상을 주기 위해서 인가?' 그럴 일이 없는데? 왜지? 왜지? '뭐 별일이야 있겠어?'
단장실 문을 여는 순간 단장님 외에 사복입은 사람 몇몇이 보였다. 이상한 분위기!
"자네가 황병장인가?" 단장은 물었다.
"통일! 네 그렇습니다!"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사복 입은 사람들이 일어서며 말했다. "황의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다. 변호사를 선임할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수 있다"
"이제부터 우리가 신병을 인수하겠습니다" 말하는 것과 동시에 두명의 사복 수사관이 팔짱을 꼈다.

나는 짧은 시간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왜일까?','하필 외박 나갈때야','드디어 나도 잡히는건가?','어떻게 된 일이지?'.....
너무도 많은 생각이 오갔다.
단장실 밖으로 끌려나가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상황파악을 할 시간은 벌어야 겠다는 생각!

"뭡니까?"
"조용히 해라! 건방진 새끼. 조용히 따라와" 기무사 사람들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에스페로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중대내무반에 니 물건 없지?" 물었다.
내무반 생활을 하지 않고 성당 파견 생활을 하던 나는 물론 내무반에 물건이 있을리 없었지만 어떻게든 중대 친한 사람들에게 내가 끌려간다는 것을 알려야겟다는 생각에 "있습니다."라고 다급히 대답했다.
"뭔데?"
"몇가지 있습니다"
"어떻게 하지?"
"잠깐 다녀오지 뭐"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 아 이 난감한 상황! 내가 수갑을 차는 날이 올 줄이야.
"가자!"
이윽고 내무반에 도착했다.
다행이 내무반에는 쫄병 하나가 있었다. 빠르게 말했다. "병준이에게 이야기해라!" 그러나 이 쫄따구 녀석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 하지 말고 니 물건 어디있어?"
핑계댈 물건이 없던 나는 그냥 침상위에 있던 가죽장갑 하나를 가리켰다.
"이새끼가 시간 끌라고 장난해?" 이어지는 빰 한대. 아프지는 않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승용차에 태워졌고 성당의 내 사무실에 도착했다.
"너 컴퓨터 잘하지? 하드 분해해 봐라"
"못합니다!"
"이새끼가...어이 컴퓨터 통째로 싣고 자료 다 가져와. 이 새끼가 놀아보자는고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하드 분해한답시고 하드를 아주 아작을 내놓을건데 그때는 무섭기도 했고 일단 그들에게 협조하는 게 싫었다.

실을 걸 대충 다 실었는지 다시 승용차에 태웠다.

뒷좌석 가운데에 앉았고 양문쪽에 건장한 수사관이 내 좌우로 앉았다.
텔레비젼에서 정치인들이 구속될때 보았던 익숙한 구도.
그러나 실제로 당해보니 무척이나 비좁았고 그러다 보니 몸이 움츠려들게 되었다. 그건 곧 슬그머니 공포심이 시작되는 걸 의미했다.
차가 부대 정문을 빠져 나갈 즈음 한 수사관이
"이제 여기는 마지막이다. 잘 봐둬라!"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후 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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