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비가 오는 내음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7. 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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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교도소



[구속10주년] 비가 오는 내음

태풍 에위니아가 지나가고 날이 개일줄 알았는데 오후들어서자 다시 비가 많이 내린다.

육군본부 영창에 수감된 건 구속된지 10일이 지나서였다.

96년 1월15일 구속되고서는 수도방위사령부 영창에 수감되어 잇는 상태에서 출퇴근으로 서울지역기무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말하자면 수방사 영창에서는 잠만 4시간~5시간 잔것이었다. 고작 4시간정도 잠만 자기위해 용산에서 남태령을 귀찮게 기무사 수사관들이 왔다갔다 한것은 잠을 안재우는 고문을 했다는 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였다. 서울지역 기무대 조사실에도 침대등의 잠잘 시설은 있었지만 그곳에서만 있게되면 내가 잠을 안재우고 조사를 계속했다는 증언을 법정에서 할까봐 일부러 수방사 영창 입/출소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나를 넣었다 뺐다했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영창 생활은 10동안 하지 못했고 10일 내내 기무대 조사실에서 내내 있었다.

10일동안의 기무대 조사실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육군본부 영창 얘기를 하려한다.

육군본부 영창에 수감된게 1월 26일인가 27일인가 되니까 영창 밖의 모습은 온통 눈으로 하얗게 덮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영창안에서 기억하는 영창의 밖의 모습은 하얀 눈 내린 모습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영창 안에서 한달두달이 흘러 어느날.

'토닥..토닥..토닥...토닥..'

'이게 무슨 소리일까?' ,' 토닥..토닥..토닥...'
'비?...아 비소리구나!'

간수로 있는 헌병에게 물었다.
"지금 밖에 비와요?"
그렇단다.

아! 비가 오는 소리는 이렇구나.
보통은 비가 오는 걸 보고 혹은 비가 오는 듯한 소리가 나면 눈으로 확인을 하기 때문에 소리만으로 비가 온다는 걸 확신하지 않는데 비해 영창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전혀 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내 키의 1.5배정도 되는 곳에 작은 창살달린 창이 있긴하지만 그걸로는 밖의 상황을 짐작하기 힘들다) 소리로 비가오는 것을 느낀것이다.

봄비가 오는 소리는 '토닥..토닥..토닥'이었다.
어느정도 비가 내리고 그치자 이번엔 살짝 비린내와 함께 습기어린 냄새가 밀려왔다.
비가 그쳤구나!

지금 밖은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하얀 모습은 아닐텐데....

영창 안에서는 노래를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가만히 정자세로 있으면서(군대 영창은 하루 16시간을 정좌하고 있어야 한다.) 정신을 집중하면....
노래가 들려온다. 그냥 상상이 아니라 아주 훌륭한 연주가 들려오는 것이다.

그때 들려오던 환청은 그 어느 오디오보다 훌륭했다.
오히려 지금은 너무 자유로와서 언제든지 원하는 음악을 재생할수 있어서 그때처럼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지금도 그때처럼 비가 내린다.

비가 오는 소리! 새싹이 땅을 박차고 나오는 소리!
그리고 비의 향기! 햇살의 내음!

누군가를 가둔다는 것이 그를 온전하게 가두지 못한다.

1996년 충남 계룡대에서 나는 몸은 갇혔으되 영혼은 새로운 길을 찾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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