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삶의 억울함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1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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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십자가의 길’ 14처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어디입니까? 저에게는 12처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한때는 ‘키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지는 장면과 ‘용감한 여인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리는 장면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1처’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죄한 분께서 죄인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의롭고 선량하신 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는 모습이 마음을 눌렀습니다. 그분께서는 변명도 항변도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담담히 판결을 받아들이십니다. ‘삶의 억울함’을 인정하시는 모습입니다. ‘인생의 불공평함’을 받아들이시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제1처의 예수님’께서는 억울함과 불공평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살면서 억울함을 당합니다. 때로는 모함도 받고 때로는 이용도 당합니다. 오해 때문에 멍들었던 일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 처신하였습니까?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였습니까? 아니면 악쓰며 반항하였습니까? 결과야 어떻든 남은 것은 상처입니다. 이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억울함의 상처’가 십자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생각하면 가슴 떨리고 증오가 솟더라도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러면 은총이 함께합니다. 누군가 ‘오른뺨을 치더라도’ 눈은 흘길지언정 참아 내게 하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매일미사 강론 2008.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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