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친구가 죽었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9. 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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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부하던 중에 슬픈 소식을 들었다.
나와 같은 학번이고 한번 유급해서 본과 2학년에 다니던 한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그 통화 내용은 이러했다

" 야 xx가 오늘 4시에 CPR이 떴다가 6시경에 expire했데..빨리 학교로 와라.."

환자가 죽었다는 말을 의학용어로 expire하였다고 한다. CPR이라는 말은 심폐소생술이라는 말이다. 그 친구는 이번주 월요일 아침에 수업을 듣다가 몸이 이상함을 느껴 응급실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급성 심근 경색의 특징적인 증상인 가슴에서 시작하여 팔 내측으로 방사되는 통증과 손발의 청색증이 보여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응급실로 갔던 것이다. 응급실에서 시행한 심전도상에서 급성심근경색 소견이 관찰되어 바로 중환자실로 이송되었고,,혈관촬영에서 관상동맥이 깨끗하게 관찰....심근경색이 아님을 확인하였고..추적관찰중..어제 오후 4시경 급사하였다. 어제 점심때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통화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3시 30분경 화장실에서 쓰러져 있는것을 간호사가 발견..바로 침대로 옮겼고..4시경에 심장이 멎어 2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으나 결국 죽었다.

멀쩡하게 살아있던..아니..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았고..해야할 일도 많고..앞으로 누려야 될 것도 많고..꿈과 삶의 목표와 희망과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과 앞으로 즐기며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아 있던 친구가 순식간에 죽었다.

다음주에 본과 2학년 시험기간이다. 그 친구도 역시 이번 시험을 잘 보기위해 시험 공부 계획표를 짰을것이고 월요일 아침 학교 오면서 강의록 들고 지하철에서 암기했을것이다. 응급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친구들과 통화를 했고..빨리 퇴원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아니면 화를 냈을지도..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왜 이렇게 아프냐고...시험 끝나고..여자친구하고 놀러갈 계획도 세워 놓았을 것이다..

그리 친한 친구는 아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그 친구가 하염없이..너무너무..불쌍할 뿐이다..애석하다..가을 바람에 나뭇잎이 떨어지듯 그렇게 가 버렸다..너무도 갑작스럽게...

의학은 무기력하다. 그 친구의 진단명은 myocarditis 였다. 한글로 번역하자면..심근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급성 심근 경색이야 원래 사망률이 30%에 달하는 병이므로 그렇다고 쳐도..이 병은 원체가 드문 질환인데다가..사망률도 1% 미만이다..단 20대 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이기는 하지만..그 친구는 담배도 안피고..술도 많이 안 마시고..비만하지도 않은..지극히 정상적인 친구였다..강남성모 교수님 말에 의하면 이 병으로 죽은 사람은 20년만에 처음 봤다고 한다. 내과책에도 몇페이지 안나와있다. 단지 드문질환이고...사망률도 1%미만이라고.....죽는 사람은 그냥 재수없다고 생각하라는 말인지....

불쌍하다..가슴이 애려온다...슬프고...눈물이 난다..

그 친구가 영안실로 옮겨가기전 병실에서 마지막 얼굴을 보았다..눈을 감지 못했다..당연하지..어떻게 눈을 감을수가 있겠는가...얼마나 억울했을까...죽기가 얼마나 싫었을까.....어떻게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많은 것을 두고...해야 할 것...누려야 할것...사랑하는 사람들...그것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을수가 있겠는가...

얼마나 슬펐을까...살아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다..그친구는 얼마나 슬펐을까...길을 떠나면서 얼마나 슬펐을까..

어제.. 난 사람들 뒤에서 겨우겨우 그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오열하는 부모님들..너의 친한 친구들...친척들..속에서 너를 난 똑똑히 보았다..찬구야...

너를 잊지 않겠다.

명복을 빈다.

다음 세상에서는 꼭 행복해 질거다..친구야..
여기 이 세상..너에게 고통만 준 이 세상 말고..다음 세상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

친구가 가엾어 죽겠다.

지금은 새벽 1시다..영안실에서 밤을 세고..오늘 저녁에 일어나..외과 책을 펴들었다...사망율 0.1%...자연치유되는 질환..따위의 구절들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5년 생존률을 10%에서 11%로 늘리는게 과연 대단한 의학의 발전인 것인지...

읽던 책을 마저 읽고..자야겠다..

내일 아침에 장레 미사가 있으니..

그러나..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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