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른의 맛, 함부르크의 바람
독일을 여행하다 보면, 남쪽의 바이에른과 북쪽의 함부르크는 같은 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표정을 하고 있습니다.
바이에른 지방은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맑은 호수와 비옥한 평야가 펼쳐진 곳이에요. 풍요로운 자연은 양질의 보리를 길러냈고, 이 지역 사람들은 “좋은 맥주를 만드는 것”에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바이에른을 대표하는 라거 스타일만 봐도 그렇습니다.
은은한 몰트 향과 부드러운 단맛을 가진 헬레스(Helles), 짙은 밤색 속에 캐러멜과 초콜릿 풍미를 담은 전통의 둥켈(Dunkel), 그리고 봄 축제와 계절을 상징하는 강한 라거 복(Bock)까지.
바이에른은 좋은 기후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맥주의 ‘맛’을 완성하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맥주가 세계로 퍼져나가고, 오늘날 당연하게 사용하는 홉(Hops)을 맥주의 기본 재료로 정착시킨 주역은 뜻밖에도 바이에른이 아니었습니다.
정작 맥주를 세계로 보급한 도시는 북쪽의 항구, 함부르크였죠.

함부르크, 바닷바람을 타고 홉을 퍼뜨리다
13세기부터 함부르크는 북해와 발트해 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습니다. 이곳에는 400개가 넘는 양조장이 있었고, 이들은 바이에른처럼 좋은 맥주를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맥주를 더 멀리, 더 오래 보내는 것.
그 해답이 바로 홉이었습니다.
함부르크 양조장들은 장거리 수출을 위해 맥주에 홉을 넣기 시작했고, 그 결과 태어난 것이 바로 “함부르거 비어(Hamburger Bier)”였습니다.
발트해와 북해를 건너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까지 함부르크 맥주가 퍼져 나갔고, 런던 펍 간판에도 “Hamburger Beer”라는 문구가 걸릴 정도였죠.
흥미로운 건, 이 시절부터 홉이 맥주의 필수 재료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입니다. 함부르크는 상업적 필요를 통해 홉을 표준화했고 이것은 단순한 향미 변화 이상의 혁명이었습니다. 홉은 맥주를 부패로부터 지켜주었고, 발트해를 넘어 스칸디나비아, 네덜란드, 영국까지 함부르크 맥주의 명성을 퍼뜨렸습니다. 14세기 함부르크산 맥주는 유럽 전역에서 ‘프리미엄 비어’로 불리며 인기를 누렸습니다. 결국 맥주는 유럽 전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바이에른에서도 계속 좋은 맥주를 만들었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그리트(gruit) 방식에 의존하며 지역적 소비에 집중했습니다.
그거면 충분히 먹고살만 했으니까요. 멀리 보낼 필요가 없으니 홉도 필요없었죠.
현대까지 이어진 함부르크 맥주의 전통
함부르크의 양조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집니다.
1879년 설립된 홀스텐(Holsten)은 함부르크를 대표하는 필스너(Pilsner)로, 깔끔하고 드라이한 맛과 분명한 홉의 쓴맛을 자랑합니다. 현재 50여 개국에 수출되며 여전히 “함부르크 맥주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죠.
또 다른 상징은 아스트라(ASTRA)입니다. 1909년 함부르크 생트 파울리(St. Pauli)에서 시작된 이 라거는 가볍고 상쾌한 맛으로 사랑받으며, 자유로운 항구 도시 함부르크의 정체성을 담은 로컬 맥주로 자리잡았습니다.
바이에른 vs 함부르크, 품질과 확산
결국 맥주 역사에서 바이에른은 “품질의 상징”, 함부르크는 “확산의 상징”이었습니다.
바이에른의 맥주는 알프스 산맥 아래에서 완벽한 맛을 추구했고, 함부르크의 맥주는 바닷바람을 타고 유럽 전역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라거, IPA, 스타우트까지…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함부르크 항구에서 불어온 바닷바람과 그 속에서 발견한 홉의 비밀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