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치명자산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9. 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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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자란...순교자의 다른 표현이다.
전주에는 치명자산이라고 불리우는 산이있다.

이 산에 대한 천주교측의 설명을 보면
이 산은 옛부터 승암산(중바위산)이라 불렸는데 산정에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많이 불려지고 있다.

이 산에는 1784(정조 8년)년 호남에 처음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처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중철(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일곱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이분들은 1801년(순조1년) 신유박해 때, 9월부터 4개월 여에 걸쳐 전주 남문밖(현 전동성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
살아 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하게 시체를 거두었으나 고향인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땅에 묻히지 못하고 들 건너 재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 되었다.
  그 후 1914년 4월 19일 전동 성당 보두네신부와 신도들이 이 산정에 모셨다.
선인들이 해발 300미터의 산정에 님들을 모신 뜻은 세계교회가 ‘진주중의 진주’라고 찬탄하는 동정부부순교자의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행, 그리고 숭고한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고 그 님들이 전주를 수호해 주기를 기원함이었다.

지방 기념물 제 68호로 지정된 순교자 묘 바로 밑에는 님들의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4년 5월 9일 건립된 기념 성당이 있고, 그 아래 왼편에는 가파른 산길을 걸으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오른편에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가 조성되어있다. 순교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산은 진리의 뜻을 세운 사람과 순교자들을 흠모하는 순례자들에게는 믿음의 고향이며, 기도 공원으로 사랑 받는 한국의 몽마르뜨르(순교자산)이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이자 공식명칭은(바꾸지 않았다면) 승암산이다. 전주 사람들이  자연스레 부르던(급격히 요10년새 대세가 바뀐듯하지만..) 이름은 '중바위산'이다.

언어의 사회성에 대해 공부한 게 생각난다면 언중의 지지를 받는 어휘가 쓰이는 게 상식적이라는 걸 떠올릴수 있다. 그렇다면 천주교의 교세가 산 이름마저도 바꾸어 놓았구나 하는 생각에도 이를 수 있다.

뭐랄까 몇백년 아니 몇천년(전주가 후백제의 도읍이었으니) 동안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명칭이 요 몇십년 새 바뀌고 있다.

천주교 신자이긴 하지만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치명자산의 가장 좋은 위치에는 절이 들어서 있다.

치명자산의 천주교 성지는 가파른 부분과 정상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기세좋게 자리잡고 있지 못했고 중바위산 한쪽에 기생하는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명칭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해두고....


치명자산 정상 쪽에는 순교자의 묘가 있다.
프랑스인 보두네신부(전동성당을 건립한 신부)가 순교자부부의 묘를 이쪽으로 이장해 왔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천주교 측에서는 순교자들이 전주를 수호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고 적고 있지만 조선의 최대 성지중 하나인 경기전 앞에 떡허니 전동성당을 지은 심뽀로 미루어 봤을때 전주 시내를 내려보고 있는 이 곳에 묘를 쓴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누구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묘지에 오르는 길 그것도 가파른 쪽을 골라 십자가의 길이 만들어져 있다.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죽을떄까지의 길을 묵상해보는 기도이다.

이게 치명자산의 정상에 있는 순교자의 묘를 보러가는 데 아주 적절한 아이디어인 것이다.
어차피 순교자의 묘를 가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야할 터인데 산을 오르는 고통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비유해 둔 것이니 말이다.

전주의 천주교 신자들 뿐만아니라 전국의 천주교신자들이 즐겨찾는 성지가 된  이유 중 하나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해 보기에 무척 좋은 곳이라는 데 있다.

이렇듯 세상은 변했다.
처음의 의도야 어찌되었건 전주와 치명자산 전동성당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곳이 되었고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되었다.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

십자가의 길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자면

지금은 돈을 들여서 성역화를 하느라 아래에는 잔디도 깔고 도로도 깔끔하게 아스팔트로 깔려있지만 예전에는 비포장 길에 십자가 길은 그냥 자갈 길이었다. 그 자갈 길에 썩지말라고 기름칠된 통나무(철도의 받침목을 상상하면 되겠다)를 십자모양으로 큼지막하게 12개를 박아두었었는데 사람들 아마도 할머니들이 그 밑에 전통신앙에서 그러는 것처럼 마이산 모양으로 돌을 이곳저곳에 쌓아두었었다.

지금은 계단으로 만들었고 그런 토속신앙적인 돌들은 다 치웠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느곳에서나 볼 수 잇는 천주교 깔끔한 성지였다.

그러나 자갈길에 기름칠된 통나무이던 시절에는 나에게는 사막의 은수자들의 고행처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묵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잘 꾸며둔 곳 같은 느낌이 강하다.

물론 돈을 들여 성역화 한 것이 별로다는 얘기는 아니고 돈을 들여 사업을 하더라도 그 곳의 본래적 느낌을 살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얘기다.

여기서 또다시 잠시 샛길로 빠지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성서의 기록자는 십자가를 지고가다가 세 번 넘어졌노라고 되었다. 그러니 살면서 넘어지고 그러는 거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또 샛길!
지금의 십자가의 길(예루살렘에 있는)을 지키고 유지하는 책임은 작은형제회(프란치스꼬 수도회,내가 살았던 곳) 예루살렘 성지 관구에 있다. 한국 관구에서 그곳으로 파견갔던 형제가 있었는데 나와 같이살던 수도회로는 1년 선배인 형제였다. 수도회에 있으면서 가장 본경하면서 좋아하던 형제였는데 그 형제가 한국에 와서는 1년에 한두번 예루살렘 쪽으로 가는 (물론 로마의 프란치스칸 성지 - 아씨시 등등도) 성지순례팀을 모아서 다녀오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올해는 시간이 안맞아서 못가겠지만 나중에 돈 모아서 지원해봐야겠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그 형제의 자상한 안내를 들으며 십자가의 길을 해보아야 겠다.

샛길이 많다보니 글 마무리가 안되네요^^*

결론은 산에 오르면 기분이 좋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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