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안상수와의 일상적 대화[펌]

비회원 2006. 3. 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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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http://miseryrunsfast.net

이 내용은, 모 웹사이트의 오픈 전 사전자료모음으로 준비했던 것 중 하나입니다. (이 이외에도 몇 개 더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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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디자이너이자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 라는 직함보다도 그가 고안한 글꼴인 '안상수체' 로 그는 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안상수체 쓰는 사람이 있나... 하는 시시껄렁한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연 안상수 교수의 작업실은 꽤 넓었다. 인터뷰를 위해 들어선 작업실 바닥에는 '화和' 라는 글자가 가득했다.
인터뷰에 대해서는 이미 사전 인터뷰와 질문지 정리가 있었으나, 이런 ‘공식적인’ 인터뷰는 이미 수없이 해 온 터일 안상수 교수의 인터뷰론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냥 사는 이야기나 좀 하는 거지 뭐." 라는, 어찌 보면 인터뷰로서는 참 불안한 형태로 인터뷰는 흘러간다.
책상위에도 바닥에도 여기저기 놓여있는 "和" 가 쓰인 화선지들을 구석으로 치우며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Interview



안> 인터뷰라는게 참 그렇더라고. 2002년이던가, KBS에서 디지털 미술관인가 하는 프로에 한 회분 한다고 해서 조건을 달았어. ‘좋다. 다 찍어라. 대신 절대 귀찮게 하지 말아라.’ 하고. 그랬더니만 일주일을 카메라가 딱 붙어서 따라 다니더라고. (웃음) 거참, 결국은 2회 분량으로 편집해서 나갔던데. 또 한번은 MBC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마침 그 때 금누리 선생하고 같이 있었단 말이야. 화면 저 뒤쪽에다가 금누리 선생을 배경으로 놓고 찍었지.
m> 그냥 배경으로요?


안> 그렇지. 그냥 배경으로. 그랬더니 PD가 왜 그러시느냐고 물어보더라고. 아 얼마나 좋아. 금누리 선생. 배경으로도 강렬하고. 그런데 잘 이해를 못 하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보는 건데, 인터뷰를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좀 자유를 주는 방법. 그러니까 인터뷰라는게 나름 언론이라고 그 힘을 백그라운드에 깔고 이야기하는 거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 언론 파워라는게 있으니까 그 힘을 가지고 하는 거지. 인터뷰는 상호작용이 되어야 되는 건데. 그런 방향성을 잡는 게 참 어렵나 봐.


그냥 사는 이야기’ 로 인터뷰 방향은 정해졌다. 사실, 검색엔진에 키워드로 ‘안상수’ 세 글자로 받아낼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많겠는가.

m> 화(和) 가 많네요.


안> 아. 이게… 전에 중국에 갔을 때, 중국에 있는 미술대학에서 1년간 방도 주고, 강사료도 주고, 조교도 붙여주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 조교로 있던 사람이 젊은 부부였어. 1년 만에 다시 중국에 가서 그 부부랑 같이 저녁을 했는데, 아이 이름을 지어 달라는 거야. 그 부부가 첫 번째 애를 유산하고 두 번째로 애를 가진 거라서. 아, 그게 좋더라고. 내가 그런 걸 해도 될까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좋더라고.

m> 대부가 되시는 거네요.


안> 그래서 이름을 정하는데… 화(和) 가 좋아. 함께. 중국어 발음으로는 ‘허’ 라고 하는데, 화이부동(和而不同 : 화합하기 위해서는 달라야 한다) 에서 따온 거야. 뭐 단어 하나에 뜻 하나니까, 결국 좋아하는 뜻을 고르게 되는데. 영어로는 Harmony.
같은 식으로 모여 있는 건 신영복 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아첨이지. 다 똑같은 게 모여 있으면 어떻게 나랑 다른 걸 구별하나. 잘 사는 건 결국 자기 성질과 긴장을 유지하면서 같이 있는 거다 싶은 거지. 그래서 정해진 이름이에요. 같지 않은 사람들이 공존해서 잘 지내는 게 평화지. 그런 의미들이 들어있는 단어야. 이 화(和)가.
중국 이름은 성하고 돌림자가 정해져 있어서 한 자만 정하면 되거든. 그래서 그거 보내려고 이렇게 화를 잔뜩 쓴 거야. 쓴 것 중에 세 장을 골라서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그 중에서 하나 딱 눈에 띄길래 골라서 그 아래에다가 이만저만해서 이 글자로 정했다 써주고 인장 찍어서 보냈지. 어제 보냈어.


m> 이름 처음 지어 주신 거죠?


안> 처음이지.

m> 그럼… 주례도 서 보신 적이 없으시죠?


안> 없지. (웃음)

m> 기분이 어떠세요?


안> 생명에게 이름을 주는 거잖아. 이름이 없으면 떠올리거나 생각할 때 참 어려워지는 거니까. 이름을 준다는 건 결국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게 되는 거고. 막상 해 보니까 또 자못 숙연해지기도 하고.
그런 느낌도 있어. 옛날 중국 이야기인데, 어떤 장수가 전쟁에 나갔는데 그 부하 중 하나가 등창이 난 거야. 졸병이 등창이 났는데 그 장수가 자기 입으로 그 고름을 빨아줬다는 거야.
고향에 있던 그 졸병의 부모가 그 소식을 듣고는, 통곡을 하더래. 저 장수가 우리 아들 죽이는구나 하고.


안상수는 대학에서 학교 신문 편집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한글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한글은 안상수에게 있어 도구가 되었다. 그는 다른 인터뷰에서 ‘한글을 그 물物로 파악한다’ 라는 말을 했는데, 한글로 문학을, 패션을,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한글은 그에게 연구과제이며 동시에 영감을 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m> 안상수 선생님은 필기도구로 붓펜을 사용하시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안> 손에 무리가 안 가는 게 붓이어서. 다른 건, 이런 볼펜은 딱딱하잖아. 딱딱한 걸 마찰시켜서 쓰려니까 힘이 들고, 손에 무리가 가지.
m> 게다가 노트는 작은 걸 쓰시는데…



안> 일수노트. (웃음) 이걸 파는 데가 있어서, 가끔 가서 왕창 사다 놓고 써.

m> 안 그래도 노트도 작은데, 붓펜으로 쓰시면 한 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수가 작아지잖아요. 선생님의 작업인 글꼴들 역시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있거든요. 공간적으로 자리를 넓게 차지한다는 느낌이랄까…. 한 마디로 하자면 ‘단위 면적당 정보량이 적다’ 랄까요.


안> 단위 면적당 정보량이 작다? 재미있네. (웃음) 음, 안 그래도 너무 집약적인 게 많다고 봐요. 글자도 말도 다 너무 빽빽하게 모으고. 붓은 낭창낭창하다고 할까. 히바리가 없다고 할까. 자체에 힘이 있는 도구가 아니야. 펜이나 볼펜은 자체에 힘이 있는 도구지. 단단하고, 강하고. 그 대신 붓은 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그건 다 내가 정할 수 있는 거니까. 나도 어릴 때는 연필 쓰다가, 우리 때는 국민학교 들어가면 잉크를 썼다고.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붓에 맛을 들였지. 게다가 편해. 밥 먹다가 냅킨에다가도 아무 말이나 써도 되고. 볼펜으로 이런 걸 어떻게 하느냐고.
그런데 요즘은 또 연필이 좋아져요. 너무 딱딱하지 않은 걸로, 대신 너무 연해도 안되고. 그래서 B나 2B 정도가 좋아.
단위당 정보량 보다는 그 속에 어떤 아우라가 들어있는가가 중요해. 나는 가끔은 공책 말고 아무데나 글을 쓰는데, 특히 다른 책이나 잡지 위에다가 글을 쓰고 나면, 내가 쓴 글자 사이에 있는 글자들이 굉장히 강렬하게 튀어 나올 때가 있어. 그 느낌이 좋아서 붓을 쓰기도 하고. 요즘 붓펜들은 잉크도 카트리지로 갈아 쓸 수 있고 해서 편해.


안상수의 작업은 기존에 있는 ‘한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세종대왕이 만들어 낸 도구를 안상수는 붓을 사용하듯 힘을 주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자신의 표현으로 만든다. 그런 그의 디자인에서는 휴머니즘, 평화, 생명(命), 정체성, 디자인, 인생 그 자체가 나온다고 단언한다.


안> 아까 프린터가 고장나서 아침에 용산에 AS 맡기러 다녀왔는데, 길에 노숙자를 위한 급식 줄이 주우욱 늘어섰더라고. 그런데 운전하면서 보다 보니 많이는 못 봤지만, 사람들이 하늘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거야. 줄 서서는. 선진국의 거지들은 자존심도 있고, 몇 시 넘어가면 영업시간 끝났다고 돈도 안 받는다는데. 자기가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게 없어지는 건 참 슬픈 거지.


우리는 마지막으로 안상수의 가방을 열어보기로 했다. 그의 바바리 코트와 모자와 함께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만한 이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가방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서 안상수는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했고,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런 이야기들에 대해 찾아볼 수 있다. (안상수는 “듣는 사람들이야 새로 들으니 좋겠지만 하는 나야 같은 이야기 계속 하려니 지겹지.”라고 손사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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