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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아내 몰래 하고 싶은 일

비회원 2006. 4. 2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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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계열에 입학하는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아닌 유행이 되다보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들 말고도 편입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늦게 의과대학을 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 부부도 그런 사람들에 속한다.

윗학년인 아내를 만나 학생때 결혼해서 지금 아내는 의사로 전공의 수련을 받고 있고 아직 남편인 나는 학생이다.

같은 학교인데다 하늘같은 선배인 아내이다 보니 내가 대충 무슨 생각과 무슨 일을 하는 지 아내가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혼한지도 얼추 2년이 다 되어 가니 자유롭고 호방했던 총각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방학이나 주말같은 때엔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에 열올리던 생각, 부산이든,제주도든 친구네 집을 향해 훌쩍 여행 떠났던 생각..

아내와 대부분의 생활이 같거나 비슷한 공간에서 이뤄지다니 보니 많은 편리함이 있긴하지만 가끔 살짜쿵 나만의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만의 시간이니 자유니 이런 얘기를 해봐야 집안만 시끄러울뿐 내게 돌아올 이득은 아무것도 없을게 뻔하다. 결혼한 남자에게 돈을 벌기 위한 휴식, 일, 아내 그리고 아이말고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은 사치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더욱이 남자의 취미가 프라모델 조립이라거나 만화책보기 혹은 컴퓨터 게임하기 같은 좀 유치하다 싶은 것이라면 아내에게 당당하게 나에게 이런 취미들을 할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기는 힘들어진다.

하지만 20대 초반 아이들과 공존하는 법은 보통의 30대가 살아가는 방식과 조금 다르다.
20대 초반 아이들이 하는 일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처음 대학 다닐때 처럼 몰려다니면서 놀던 생각이 나서 왁자지껄하게 놀다보면 으레 결혼한 나의 처지를 생각지 않을수 없게 된다. 나이 생각해서 행동의 조신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라기보다 아이들과 놀다보면 아무래도 아내와 노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인턴 기간중에 있는 아내는 틈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멀리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노는 시간 때문에 아내를 혼자 놀라고 하기엔 미안한 면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몰래 무언가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언가를 몰래한다는 것은 스릴과 더불어 몰래한 것을 이루었을 때 얻어지는 성취감이 있어야 하는것인데 그 성취감으로 주어지는 보상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 조차가 힘드는게 현실이다.

그래도 작은 일탈을 꿈꾸는 것은 현실을 풍부하게 해주기도 한다.

결혼하고 영화를 보게된 편수는 많아졌지만 아내와 같이 봐야 해서 장르는 폭은 좁아졌다. 무난하거나 유명한 영화 위주로 보게 되었다. 아직은 아이가없지만 아이가 생기게 되면 혼자 영화 보기가 더욱 힘들어질테니 미리미리 몰래몰래 같이 보기엔 취향이 다른 영화들을 봐두고 싶고 요즘 많아진 영화제에 어슬렁거리며 참가도 해보고 싶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며 프라모델들을 조립해볼까? 다음에 일본 갈때는 아내가 극구 말려서 못 산 나우시카 피규어를 몰래 사올까?

무언가 몰래한다는 일이 꼭 어둡고 음침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도 즐겁고 아내에게 들켜도 즐거우려면 너무 소모적이거나 남성적이어서는 곤란할 것 같다.

요즘 내가 하는 취미생활 중 하나는 사진인데 아내에게 초기 투자비용을 설명하기 이전에 작은 디카로 예쁜 사진들을 많이 찍어줬었다. 그랬더니 아내는 무척이나 나의 사진촬영 취미에 만족해 한다. 만약 아내에게 앞으로 들어갈 렌즈 값에 대해 설명을 솔직히 해줬더라면 절대로 사진 찍는 취미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이 꼭 아름다운 것은 아닌 것처럼 모든 것을 아내에게 솔직하기란 쉽지 않고 꼭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서로를 언짢게 하고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일이 아니면 아내 몰래 혼자만의 음모가 용서 받을 만한 애교스런 일이 되지 않을까?

아마도 아내도 나에게 굳이 말하지 않은 몇몇 비밀들이 있을 것이다. 이미 아내가 침대 몰래 감추어 둔 해외 구매대행으로 온 택배 물건들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 하고 있다.

조금은 모른 척 조금은 바보스러운 척 넘어가는 것도 부부 사이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배려를 아내가 무관심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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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H 1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 (이런 원고 청탁 좀 자주 왔으면 좋겠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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