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우울한 내과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9. 2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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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달간은 내과실습기간이다.여긴 부평에 있는 성모자애 병원 이라는 곳이다. 6.25때 지은 건물 그대로 쓰고 있다. 당시 피란민들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곳 수녀회에서 지었다고 한다. 그후 별다른 증축을 하지 않아..시설이 많이 낙후 되었다.병원 안은 어둠침침하고..미로를 방불케 한다.

우리 숙소에서 내과 의국으로 가는 방법은 단 한가지 뿐이다. 일단 옥상으로 올라간후 좌향좌를 한다. 앞으로 10발자국 걸어간다음 왼쪽으로 보이는 철문으로 들어간다.그리고 7층으로 올라가면 된다.다른 길로 가면 절대로 갈 수가 없다..-.-;; 첫날 해매다가 지각했지만..혼나지는 않았다..처음 온사람들은 항상 지각했다고 한다...

내가 실습하고 있는 곳은 내과- 혈액 종양 분과- 이다.내과는 하나의 과가 아니라, 8개의 분과로 이루어져 있다. 혈액 종양 분과는 백혈병 환자, 빈혈 한자, 그리고 항암 치료를 받는 암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이다. 여기 5층은 모두 내과 병동이다...51병동,,52병동..이라고 불린다..특이하게도 우리 혈액종양내과 병동은 마리아 병실이라는 애칭이 있다..아니..정식이름이 마리아 병동이다..51병동도 아닌..52병동도 아닌..5층에 존재하지만..마리아 병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첫 날엔 많이 당황했다...

우리 조원들 모두 3달동안 같이 실습하다가 이 곳 내과에 오고 부터는 각각 다른 분과로 배치받아 실습받아야만 한다. 아침에 어느 병동으로 가라고 선생님이 지시해 주는데...다른애들은 51병동,52병동,61병동,62병동 이런식인데..난 마리아 병동 이라고 해서 적지 않이 당황했다...

마리아 병동엔 34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다. 그 곳은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어두 침침한 느낌이 감돈다..다른 곳보다도 더 유별나게..우울한 느낌이 와 닿는다...5층 구석에 있는 마리아 병동...그곳에 있는 34명의 환자들중 살아서 나갈수 있는 환자는 거의 없다....아니 재생불량성 빈혈로 진단 받은 20살짜리 여자는 살수 있겠지.....여의도 성모에서 골수 이식을 한다고 하니..잘되길 기도한다...제발 수술이 잘 끝나길...시집도 못가보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러나,나머지 대부분의 환자는..병원에서 죽지 않더라도...집에서..아님..다시 입원해서..입원과 퇴원을..반복하다가 얼마 안되는 미래에 돌아가실 분들이다..이 곳은 다른 과에서 전원되어 오는 말기 암 환자들이 주를 이룬다. 항암 치료라는게 원래 효과가 입증된 암이 별로 없고, 주로 수술을 할수 없는 말기 암환자들을 위한 치료법이다 보니 그러하다..오히려 항암치료를 시행함으로써 기적을 바랄 수 있는 환자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많은 숫자의 환자들은 몰핀으로 죽음의 고통과 싸우고 있다. 선생님들은 아무것도 해주시지 않는다.아니 해줄것이 없다. 몰핀 처방...통증이 없다면..용량유지..통증이 지속된다면..용량 증가..이다.

더더욱 기가 막힌건..이곳 환자들은 자기가 살아 날수 있다고 끝까지 믿고 있다는 것이다. 몰핀-아편으로 통증이 가시자, 마치 자기의 병이 완전히 다 나은 듯 착각을 하는 경우가 기가 막힐 정도로 많다.

"선생님 이번 추석엔 집에 갈수 있겠죠?"
"선생님 감사합니다.이젠 다 나은 것 같아요.."

불쌍하고 기구한 환자들 정말 많다.
아들들이 3살,4살인 30살된 이쁘게 생긴 아주머니..대장암 4기에다가..간과 폐애 전이된 그 아주머니..병색이 완연한 얼굴로..이제 아프지 않다고..헤헤 거리고 웃더군...남편...옆에서 자기 마누라..순대도 사다 먹이고..족발도 사다 먹이고...팔다리 주무르고..의사들한텐 허리가 90도가 될정도로 굽신거리면서..감사하다고..감사하다고..없는 살림에 고생만 한 마누라 이대로 죽일 순 없다고...

도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건지...

이건 금기에 속한다. 의료인 내부에서 의학에 대해 반감을 품는건..항상 우리는 그랬다..우리의 모자란 지식과 경험에 지레 기가 죽어..백발이 성성한 교수님들이 하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다!!!!
그 분들의 말 한마디는 진리이며..그 분들의 판단은 언제나 최선이다. 우린 언제나 노력해야 하고..그 분들 처럼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찬양하라..위대한 의학이여..!!!!

그러나 우리의 위대한 의학은..이곳 마리아 병동에선 한낱 부끄러운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 권위 있는 세계의 유수 의학자들이 연일 암 치료에 대한 저널을 발표하고 있고, 새로운 항암제가 개발이 되어 암환자들의 5년 생존률이 10% 상승되었다. 새로운 진단법의 개발로 조기 진단되는 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그러나 의학은 여기 마리아 병동에 있는 말기 암 환자들에겐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다..감히..보잘것 없는 나.. 대한민국의 한 의대생은 이런 정신나간 글이나 쓰고 앉아 있다.우리 위대한 교수님이 하시는 일에 어찌 나같은 미천한 학생이 의문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라면 그런 줄 알아야지..

35살 된 위암 말기 아줌마...그 친정 엄마..둘이 앉아서 꾸역꾸역 저녁 밥을 먹고 있는 그 모습...병원 밥..그 보잘 것 없는 쓰레기 같은 밥...그 친정엄마...선량한 시골 할머니..구부정한 허리에..땅바닥에 붙어 다니면서..하나 밖에 없는 딸..옆에서 딸.. 팔다리 주무르고..머리 쓰다 듬으면서...딸은 울고..할머니도 울고...밥먹다가...울고....

혈혈 단신.. 천애고아...일가 피 붙이 하나 없는 37살된 폐암 말기 환자...성격이 고약해서...조금만 자기한테 신경을 안 써준다 싶으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기침하다....

이곳 마리아 병동을 알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다.
이곳에 있는 환자들 하나하나 다 내 가슴속에 묻어둘 것이다

선배들이 흔히 하는말..

환자는 죽어서 의사 가슴에 무덤을 남긴다는 말..

약 1%정도는 이해가 갈듯 싶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환자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 줄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열심히 공부하자..

가을인가?

이제..


ps) 혹시 오해 하시는 분들이 있으실까봐...암이라고 다 치료할수없는건 아닙니다. 백혈병이나, 림프암 같은 것들은 잘만 치료하면 완치 시킬 수도 있는 것이고..소아암도 완치 가능합니다. 조기에 발견만 하면 완치 시킬수 있는 암들도 많이 있습니다.그리고 말기라 하더라도..언제나 기적이란건 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마지막 0.1%를 위해 신이라는 존재가 있나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락사에 반대합니다.사람의 힘으로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게.인간이 할 도리이기에..어짜피 갈때 되면..다들 편안히 가는..그길을..굳이.억지로 보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치유자는 예수 그리스도(전 가톨릭이 아닙니다. 그러나 때론 어느 종교이든 종교를 가지고 싶을때가 자주 생기는 군요..)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언제나 기적이 존재하기에 말기암환자들이나 의사들이나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슬프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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