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가게

일주일 내내 당직을 서다 본문

medical story

일주일 내내 당직을 서다

비회원 2005.09.26 00:43
이번주 일주일간은 쭉 응급실 당직을 섰다.

우리조가 총 5명이니까 원래대로 한다면
하루에 한명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번갈아 가면서
당직을 서야 하는 일이다.

근데.. 내가 저번주 금요일날 당직을 섰더니
그담날에 선생님들이 아주 좋아하시면서
칭찬을 하시는 거다.
그 이유인 즉슨..내가 당직을 설때.
소아과 환자가 정말 없었단다..
보통 여기(의정부)는 하룻밤새 많으면 100명
적어도 50명의 애들이 응급실로 오곤 했지만...
내가 당직설땐 10명 밖에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내막을 말해보자면..

보통 "환타" 라는 말이 있는데
환자를 타는 레지던트,인턴의 준말이다.
환자를 탄다는 말은 환자가 많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의사가 당직을 서는 날엔
이상하게도 환자들이 많이 몰려오고,
어떤 의사가 당직을 서는 날엔
환자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말로.환자를 타지 않은 의사들에게
"내공이 깊다"라는 말을 쓴다.
이 징크스는 아주 신기하게도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한다.

즉.. 난 내공이 아주 높은,
환자를 타지 않는 "학생"으로 찍혔던 것이다.!!!
-.-a

그렇지 않아도.. 이번주에 1년차 선생님이
휴가를 가시는 바람에 일손이 엄청 딸리던 차였다.

치프 레지던트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얼굴로..

" 선생, 다음주 내내 당직을 서시오..
응급실로 내려가 환자들을 몸으로 막으시오.."

라는 order 를 내렸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지만..
약 20초간 치프 레지던트의 말을 분석해 본후에야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수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가 환자를 안 타고 싶어서 안탄 것도 아닌데...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senior가 오더를 내렸을땐,
아무리 농담처럼 들리더라도 일단 해놓고 봐야한다.

"저기요 선생님 그건 좀 힘들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 그자리에서 박살이 나곤 한다.

자기 혼자 오더를 농담으로 간주하고
배를 째버렸다가 끔찍한 결과를 맞은 사례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군말없이 알았다고 했다.

일단 죽이되건 밥이 되건
시키는 걸 한 다음에
이유를 달아도 달아야 하는 법이다.
얼핏 군대와 비슷한 면이 있다.
까라면 까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일주일간 당직을 섰다.

한가지 좋았던 건.. 숙소로 안가고
인턴숙소에서 먹고자고 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우리 숙소는 병원에서 한 15분 거리에 존재하는
원룸이라는 곳인데..거긴 진짜루 아무것도 없다.
테레비도 없고, 에어콘도 없고, 이불도 모자르고.
선풍기도 하나밖에 없는...사전적 의미의
"하나의 방" 이다.

어쨌든..

역시 나의 내공 덕분인지는 몰라도 일주일내내
하룻밤에 오는 소아과 환자수가 10명을 넘지 않았다.
-.-a

대신에 다른과 환자들이 엄청 많이 몰려들어와서
할일은 무지하게 많았다...
신경외과,정형외과,이비인후과,비뇨기과,내과.........

가끔 시간이 남을땐 응급실 밖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며 별을 바라보았다...
참 기분이 드러웠다..

" 나 환자 안탄다고 치프가 맨날 당직서래요.."
라고 하소연하기엔 너무나 쪽팔린 일이었고..
그저 의연하게 웃으면서 지내야만 했다..

어젠... 환자가 너무 없어서
걍 뻘쭘하게 응급실을 배회하던 차에..
외과 의국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응급실 학생을 바꿔달라는 것이다.
지금 시간나면 술이나 한잔하자는
친한 선배의 제안이 있었고..
나는 가뜩이나 기분이 더러운 참이었고,
환자도 없겠다...해서.. 좋다구나 하고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내가 튀고 난후에.. 애들이 응급실로 쇄도하는 바람에
우리 소아과 당직 선생님이
애타게 나의 행적을 수소문 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외과에서 자기네가 막아주겠다고
내려가지 말라고 꼬시는 바람에..
에라 모르겠다..기분좋게..맥주를 신나게 들이켰고...자버렸다...

오늘 아침... 분노한 그 선생님은
다음주도 내내 나를 당직 세울것을 치프 선생님에게 건의했으나..
그동안 쌓인 치프의 나에대한 신뢰가 너무나 깊어서..
그 의견은 그냥 묵살이 되버렸다..^^ v

의사가 평생 보는 환자의 수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나처럼 환자 안타는 경우엔..
나중에 개업했을때 환자들이 많이 올거라고
선생님들이 위로해 주셨다.

ㅋㅋㅋ

진짜일까??

'medical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한 내과  (0) 2005.09.26
의정부에 대한 느낌  (0) 2005.09.26
일주일 내내 당직을 서다  (2) 2005.09.26
사람 해부 첫날  (5) 2005.09.23
소아과  (3) 2005.09.23
삶과 죽음에 대하여..  (1) 2005.09.10
2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