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어느 의대생의 하루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10. 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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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5시 30분이다. 6시에 울리도록 알람을 조정해 놓았으나 시계가 맛이 가서인지 30분 일찍 알람이 울린다.어제는 본원 실습 첫날이었다. 첫날이라 그래서인지, 아니면 실습을 혼자 돌게 되어서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해서인지 무지 피곤했다.그래서 어젠 밤 9시부터 잤다. 할머니는 아직 주무시고 계시다. 아침을 못먹을것 같다. 오늘은 아침 컨퍼런스가 있는날이라 6시 50분까지 출근해야 한다.

집을 나섰더니 꽤 춥다. 다시 들어가 잠바를 입고 나왔다. 와이셔츠에 넥타이, 그리고 MF 잠바는 어울리지 않는다.새벽인데 누가 볼까 라는 생각에 그냥 집을 나섰다. 어두컴컴하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침 안먹은게 마음에 걸린다. 여기는 아침 컨퍼런스후에 회진돌기 전까지 학생만 달랑 떼어놓고 레지던트들끼리 밥을 먹으로 간다기에..배고프면 무지 서러울것 같았다. 중간에 엘지 25시에 들러 삼각김밥하고 초코우유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6시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제길,버스가 한대 막 지나갔다. 담배를 하나 무니, 저 멀리 버스가 보인다. 담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항상 담배를 피기 시작하면 버스가 나타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맨 뒷자리에 자리가 있다.이시간에 학교 가는 고등학생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나도 저랬으니까..우리나라의 입시 지옥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 앞이다.

학생 실습실에 들어가니 우리과 애가 한명 와 있다. 산부인과 실습생이다. 짜식 나 만큼 불쌍하군. 다른 애들은 아무도 없다. 보통 외과 계열이 아침에 일찍 모인다. 나는 무서운 정형외과를 돌고 있다. 많은 과들이 있지만 정형외과가 제일 군대식 분위기라는데에는 학생이건 의사들이건 동의를 한다. 여기는 10초만 늦어도 재떨이 날라올 듯한 분위기 이다. 넥타이 맬줄 모른다고 툴툴대는 녀석을 뒤로 하고 담배를 한대 빨러 화장실로 갔다. 아줌마가 청소를 하고 있다.제길...도대체 흡연자들의 인권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4층 정형외과 컨퍼런스에 도착하니 벌써 레지던트 몇명이 와서 앉아있다. 선배들의 인계장을 읽은 기억을 더듬어 학생 자리를 찾아갔다.맨 구석탱이 시계 아래 자리이다. 몇명의 레지던트가 야린다. 고개를 숙일수 밖에...ㅠㅠ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았으나..잘 모르겠다..아마 그냥 야렸던 것 같다. 컨퍼런스내내 교수님께서 한 레지던트를 절라 태운다. 처참하리만큼 타더군....그 불똥이 나에게 튈세라..오늘 하루 정신 바짝 차려야 겠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학생 담당 교수님께 오늘의 스케줄에 대해 물어 보니..역시 오전엔 수술 들어가란다. 도대체 미리 나누어준 스테줄표의 용도를 알수 없다. 매일 바뀐다. 그것도 학생이 스스로 알아서 물어봐서 알아보아야 한다. 코메디가 아닐수 없다. 아무도 학생한테는 신경도 안씀에도 불구하고. 학생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물어봐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레지던트가 안봐줘서 안 했는데요...라는 변명을 하는 학생은 아마 간 비대증에 걸린 학생일 것이다.

내가 아침에 따라서 회진 돌아야될 교수님은 옥xx 교수님이다. 근데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서 김xx 교수님 회진을 따라 돌란다. 문제는 도대체 교수님이 언제 어디서 회진을 돌지 모른다는 것이다. 레지던트들은 다 밥을 먹으러 가 버렸다. 지나가는 선생님한테 물어보니 대꾸도 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래서 회의실 앞 view box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로 하였다. 나의 소박한 바램은...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좋으니..제발 나에게 누군가 확실히 해야할 일을 말해주는 것이다. 언제 어디로 와서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하라...라고 말이다.ㅠㅠ

10분간 기다리니 김XX 교수님이 나타나신다.. 반가운 마음에 교수님을 따라갔더니..너 누구니..라고 하신다.ㅠㅠ 예 저는 정형외과 실습학생입니다.오늘 교수님 회진을 따라 돌게 되었습니다..그랬더니..회진 안도신단다..xx수 교수님한테 가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xx수 교수님한테 갔더니 회진 다 돌았단다. 아 좃됬다. 스케줄표에 사인 받아야 하는데....다시 한번 코메디가 아닐수 없다. 그냥 할일 하고 사인받으면 될 것을...이곳은 학생을 놀려먹는 곳이 아닐까 착각이 든다.

역시 아침도 못 먹고 13번 수술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수술복은 정말 작다. 나한테 맞지도 않는다. 짜증이 난다. 복도에 붙어 있는 수술 스케줄 표에서 진단명과 수술명을 외운다. 이거 모르면 분위기가 살벌해진다. 나머지 나의 정형외과적 지식은 거의 일반인 수준이다. 완전히 맨땅에 헤딩이다. 임기 응변으로 잘 대처 해야겠다. 의과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달고 수술방 복도를 지나가니 다들 한번씩 야린다.그래서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간다. 13번방은 맨 끝쪽에 있는 방이다. 저멀리 창을 통해 아침햇살이 흘러 들어온다. 창을 통해서 의대 건물이 보인다. 저기 있을때가 좋았지..라는 무의미한 생각을 하며 수술방에 들어선다.역시 아무도 신경을 안쓴다.

반월상 연골 절제술이라는 수술이다. 관절경을 통한 수술인데,잘 되지가 않는다. 교수님은 국내 1,2위를 다툰다는 엑스퍼트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시경적 수술하고 인연이 없나 보다. 저번에 브렌치 실습땐 충수돌기 절제술이라는 간단한 수술도 내가 들어갔을땐 내시경으로 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아 그때가 좋았다. 적어도 학생한테 신경은 써주니까..여기는 학생.. 수술에 참가도 안 시킨다. 오염된다고 벽에 붙어있으란다.ㅠㅠ 교수님 등에 가려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다리만 아프고 하품만 나온다...

수술이 끝나니 11시다.. 야호 오전일정 끝이구나 라는 생각에 레지던트한테 사인 받으러 간다.레지던트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수술 또 있어 임마.우리가 너를 그렇게 편하게 해 줄것 같애? " 그건 단순한 악의에서 비롯된 괴롭힘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냥 순수한 악의인것이다. 1시30분에 오후 외래 참관이 있다. 설마 점심도 못 먹는건 아닌가..라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잠시 쉬러 밖으로 나왔다.후게실에 커피 먹으러 들어갔더니 외과 교수님께서 담배를 피고 계시다가 나한테 살좀 빼라고 막 혼내신다. 담배피고 싶어 죽겠는데..학생은 어디서 담배를 펴야 한단 말인가..저멀리 성형외과 레지던트 무리들이 나를 야린다. 슬그머니 화장실로 가서 담배 한대를 폈다. 마취과 실습도는 녀석을 만났는데 끝났다고 신난다고 나가 버린다.ㅠㅠ

이번 수술은 인공관절 치환술이다. 오 shit 족히 4시간은 걸리는 대수술이다. 짜증나...이번 교수님은 진짜 특이 하신분이다. 학생한테 " 내가 누구냐 " 라고 물으실때 " 실습학생들의 우상이시며 환자들의 희망이시고 척추의 대가이시며 CMC의 고독한 태양이시고, 영원한 총각이신 X자 X자 X자 교수님 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여야 한다. 속으로 계속 외웠으나 자꾸 헷갈린다. 

어쨌든 이게 무슨 변태같은 짓이란 말인가...ㅠㅠ 전설같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한번은 수술방에서 어떤 선배한테 교수님이 " 이 수술의 부작용은 무엇이냐" 라고 물었더니 그 선배가 대답하길 " 교수님 수술에 부작용이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그 선배 A+ 나왔단다. 역시 아부도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 보다. 유효 적절한 말을 시기 적절하게 하는 것도 타고난 능력이다.

배고파 죽겠는데..시간은 벌써 2시다.ㅠㅠ 교수님은 수술을 끝내시고 나가버리고 레지던트들끼리 잡담을 하며 피부 봉합을 하고 있다.제엔장... 무슨 피부 봉함을 1시간 째 하고 있냐 죽일놈들...나를 흘깃 보더니 그만 가보란다..사인은 나중에 해줄거란다..그럴순 없지..내가 여기서 버틴 목적이라도 이루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서 있기로 했다. 간호사가 밥을 시키는데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는다..눈물이 나온다..흑흑..애들 시험이 끝났는지..바깥이 떠들썩하다..학교가면 내가 왕인데..여기선 아무도 나의 존재가치를 알아주지 않는다..투명인간이다..투명인간..

수술이 다 끝났다.사인도 받았다.제길 점심도 못먹었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외래로 달려간다.인턴 선생님이 나를 불러 밥 먹고 가란다..눈물 이 나오려고 하는걸 가까스로 참았다. 흑흑..햄버거가 너무 맛있었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들이 수고했다고 한마디씩 한다..짜식들..그래도 나는 감동 안한다라는 생각을 했으나..눈물이 나올라고 한다..ㅠㅠ

외래에 환자들이 절라 많다..교수님뒤에 앉았다..아무래도 교수님 이 진찰하시는데 방해될 것 같아 뻘쭘하였다..그래도 인계장에 분명 거기가 학생의 자리라고 씌여 있었고, 서있기도 민망하여 앉았다. 교수님께서 슬쩍 슬쩍 질문을 하신다.하나도 모르겠다.환자들은 나를 보며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것 같다.어느 환자가 왔는데 발에 혈종이 있다.메스로 계속 도려내도 아프다는 말을 안한다..우와 진짜 이상하다..왜 안아픈거지? 집에 가서 책을 찾아봐야 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물어본다, " 이 환자는 왜 아프지 않은가? " -.-;; 당뇨병성 신경병증..같다는 생각을 했으나..당뇨병 환자가 정형외과에 올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그게 답이다..ㅠㅠ

염치도 없이 자꾸 눈이 감긴다. 꾸벅꾸벅...교수님하고 눈이 딱 마주친다...헉..좃됬다..레지던트가 야린다..환자들은 킥킥 거리고 웃는다..얼굴이 빨개진다..

외래가 끝나니 6시다.교수님이 불평을 하신다.이건 전쟁이야 전쟁..무슨 대학병원이 환자를 이렇게 많이 보게 하느냐며..."교수님은 월급이라도 받잖아요? 나는 등록금내고 이게 뭐하는 건가요?" 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올라온다.

레지던트가 커피 사오라고 해서 커피를 사러 뛰어갔다.근데 내꺼도 사도 되나...라는 생각이 든다.설마 커피 하나 가지고 뭐라 그러겠어..? 커피를 사 갔더니 담배 달란다.담배 없다니까...막 화를 낸다..자기 꺼 주면서 피란다..정말 고맙다..담배 하나에 사람 마음이 이렇게 까지 변하다니..나도 참..많이 작아졌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그리고 수고 했단다..우리 동문 선배 형이랑 친구였다..그래서 나를 되게 잘 챙겨주려고 했는데..시간이 없단다..

내일부터 이번주 내내 정형외과 학회이다.아침 8시까지 힐튼 호텔로 오란다. 힐튼 호텔이 어딘줄도 모르고..어디로 가야되는 지도 모른다..분명히 9시쯤 시작할것이다..안 봐도 뻔하다..전국의 모든 의대 정형외과학 교실에서 모이는데..거기 아마 내가 젤 처음 도착할것 같다. 아...벌써부터 그 뻘쭘함이 느껴진다..가서 아무데나 앉으면 안된다..잘 눈치 살피다가 우리 학교 교수님들한테 눈도장 찍어야 한다...에휴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찾을수 있을지...짜증이 난다...절라 어색할것 같다..학생은 나 혼자다..혼자..

금요일에 케이스 숙제도 있어 그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 글 쓰느라 1시간을 소비했다. 내일 학회 끝나고 다시 병원으로 가서 자료를 수집해야 할것 같다. 진짜 바쁘다...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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