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독후감

MagicCafe 2026. 4. 29.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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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좀 거창하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설계라니. 마치 내가 누군가의 프로젝트인 것 같아서.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읽다 보니, 진짜로 그런 것 같아서 좀 씁쓸해졌다.

 

데이비드 이글먼은 신경과학자다.

뇌를 들여다보는 사람.

그가 하는 말은 간단하다.

당신이 "내가 결정했다"고 믿는 그 순간, 사실 뇌는 이미 수백 밀리초 전에 결정을 끝냈다는 것.

의식은 그냥 사후에 이야기를 꾸며내는 나레이터에 불과하다고.

 

솔직히 좀 불편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증류를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증류기 앞에 서서 헤드, 하트, 테일을 자르는 순간.

수치를 보는 게 아니다. 향을 맡고, 입에 대보고, 그냥 안다.

"여기다."

분석이 아니다. 뭔가가 먼저 반응한 거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맞다.

직관이 먼저였던 것이다.

 

이글먼이 재밌는 말을 한다.

뇌는 단일한 자아가 아니라 여러 하위 시스템이 서로 경쟁하는 의회 같은 구조라고.

충동과 이성, 욕망과 자제력이 매일 표결을 한다는 것.

 

오늘 일을 끝내고 술 한 잔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가, 어느새 잔을 들고 있는 나를 설명하기엔 그럴듯 하다.

결심을 한 나하고, 잔을 드는 나는 같은 사람인데,

애초에 "나"라는 게 하나가 아니었던 거다.

 

책 후반부에서 이글먼은 범죄와 자유의지 얘기를 꺼낸다.

뇌 종양이 생겨서 갑자기 아동 성범죄자가 된 남자 얘기가 나온다. 종양을 제거했더니 성향이 사라졌다. 종양이 재발했더니 다시 나타났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뇌를 가진 사람인가.

 

이글먼은 단죄보다 이해를, 처벌보다 교정을 이야기한다.

몸이 고장나면 치료한다. 뇌가 고장나면 왜 단죄하나. 치료를 하면 되지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도 안다.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

내가 나라고 믿는 것들. 내 선택, 내 의지, 내 결심.

그것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내 뇌가 이미 짜놓은 각본이라면.

사람의 운명은 성격(?)같은 걸로 어느 정도 결정되는 건가 싶다.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야 하고, 선택해야 하고, 책임은 져야 하니까.

 

뇌가 시킨 거라고 해서 내 것이 아닌 건 아니잖나.

결국 그 뇌도 내 것이니까.

...그냥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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