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신장내과 라운드, 잊을수 없는...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11. 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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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아침 11시에 모든내과 학생들이 모여 round라는 것을 한다...번역하자면 집담회라고 할수 있겠는데...환자 한명을 맡아서 증례발표를 하는 것이다...발표하는 파트중 교수님 한분이 들어와 참관을 하시고...그 파트 학생이 발표를 하는 것이다..물론 분위기는 교수님의 캐릭터에 따라 좌우 된다.....상당히 aggresive한 교수님들께서는 발표자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 하나하나 번호를 불러가며 질문을 날리신다.....그리고 발표자한테는 " you didn`t show me anything " 이라는 아주 간단하고 멋진 말을 남기고 나가버리신다....

아침회진을 각자 마치고 우리는 8층 내과 학습실로 모여들었다. 각자 주어진 과제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신장내과 애들이 달려들어와 외쳤다.

"야 오늘 땡시본데!!!"

아..땡시..기억의 저편에서 가물가물 거리던 땡시라는 단어..30초 마다 땡땡거리던 종소리...종을 치던 조교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리고 싶었던...그 시험....

본과 1학년...막 본과에 진입했었던 우리에게 2주에 한번꼴로 대쉬하던 땡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볍지 만은 않은 짐이었다...

거의 매일 밤을 해부학 실습실에서 실습용 시체....와 보내던 시간들이었지.......우리조는 4명이었는데...남자2..여자2....해부라는게 순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지라...무지 힘들었던 기억이다..거의 우리 둘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발랐던 것 같다..근데 더 억울한건..그렇게 노가다를 뛰었음에도..기억이 하나도 안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3개의 조로 나뉘어서 해부학 실습실로 들어갔다...조교들이 외치는 소리.." 고개 들어 이녀석들아..!!!"...테이블위에는 인체의 여기저기를 때어내어 만든 땡시용 표본이 들어 있었고, 우리가 맞춰야 하는 구조물에는 바늘이 꽂혀 있었다...30초마다 종이 울리는데 30초안에 문제를 맞추고나서 잽싸게 다음 문제로 이동해가야 한다.

그런데 신장내과에서 무슨 땡시??

다름이 아니라 이 교수님 엽기적이게도 신장질환의 현미경적 소견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와 문제를 풀게 시킨다는 것이다....무슨 끔찍한 현미경이란 말인가?? 본과 2학년,,병리학 시간에 현미경을 들다 보고 들다 보고 또 봐도.. 현미경을....아작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들다 봐도 모르던 신장 질환이었다. 병리 땡시 베이스 깔아주고..필기공부에 목숨 걸어서 겨우 재시를 뺐던 나다...나는 유달리 땡시에 약하다...그래서 아직까지도 눈치없다고 구박 받는지 모르겠다.

좌우지간..

물론 신장학에 대한 공부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2002년 5월..중간고사 이후로 신장에 관계된 그 어떤것도 공부하지 않았다...새삼스럽게 의학의 방대함을 느꼈다..쉬지않고 부지런히 뭔가 열심히 했는데...2002년 5월 이후로 신장을 한번도 안봤다니...큭..여기 내과에서도 아직 신장을 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를 담당하시는 교수님은 마일드하신 분이라 마음을 푹 놓구 있었는데 갑자기 어그레시브한 교수님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었다.....제엔장..너무 늦었다...포기했다..마음을 비우니...편안했다..어떠한 갈굼을 당하더라도 끄덕없는 마음가짐을 만들었다..일체유심조...라고 했지??

역시 어그레시브한 우리 교수님...화려한 말빨과 현란한 기교를 사용해가며 발표자들을 신나게 갈군후 우리들을 쳐다보며 사악안 미소를 날리셨다..씨익~~~

" 너희들 땡시 준비는 잘 했겠지?
하위 50%는 내과 의국 게시판에 시험지 붙여놓을테다...그리고 개별 면담도 있을 것이다..^^v .. "

50여개의 슬라이드가 돌아갔고..
나는 마음을 비우고..편안하게..그림을 감상했따..
음..참..멋지군...쿡쿡쿡....물론 답지를 다 비워두면 확 눈에 띄기 때문에 뭔가 채워넣어야만 했다..
그래서 신장의 병리학적 분류에 해당하는 질환명들을 대충 아무거나 때려 넣었다...쿠하하

이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교수님이 그 자리에서 채점을 하시는 거다...
채점을 끝내신 교수님께서는...
시험지를 하나하나 넘기며 그 시험지의 주인에게..코멘트를 하셨다.
" xx번 음..잘했어..거의 다 맞았어.." (--> 우리과 1등)
" xx번 음..잘했군.." (-->우리과 5등)
" xx번..너는 문제만 썼군..." (--> 내 뒷번호..해부학할때 나랑 같이 노가다했던 녀석..ㅠㅠ)
" xx번..공부좀 해라..임마.. " (--> my friend)
" xx번 하나 맞았군.."

아아아...젠장..
물론 몇몇 엑설런트한 여자애들빼고는 대부분 다 틀린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그래도...공개적으로...이러시다니..

" 98번 " (나다)
" 옛.."
교수님 잠시동안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알겠지 ??"
" 아..네..."
" 자네 무슨과 할건가? " (어라..대화가 길어지네..)
" 아..예 저는 내과나 소아과에 관심이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비굴함이다...-.-;;)

" 음 보기와는 달리 메디컬 쪽에 관심이 많군..."

( 실상 내 분위기는 딱 외과 쪽이다..수술복 입고 마스크하고 지나가면 우리과 애들이 나한테 인사를 한다..교순줄 알고...요샌 나에게 꾸준히 인사를 하는 인턴도 생겨 버렸다..참 곤혹 스럽다)

역쉬..내과에 관심이 있다는 말 한마디에
어그레시브한 교수님이 마일드하게 바뀌셨다..

쿠쿠쿠

내과 의국 게시판에 어제도 확인해보고 오늘도 확인해 봐도 우리들의 시험지는 붙어있지 않았다..이얏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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