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사평역에서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 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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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시는 좋아하지만 시인은 그저 정이 가지 않는 사람이다.

전남 화순군 사평에 가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사평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




요즘 이문열씨가 자기는 386에게 찍혔다고 그게 더 무섭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노해씨 시귀를 들려주고 싶다.

'찍혀봤자 별볼일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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