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퍼옴]부재중 전화 30통… 사랑이 끔찍해지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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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한 여성지와 인터뷰를 했었다. 기자가 물었다. “연애 카운슬러이면서 자신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내 대답은 간단했다. “가끔은 지겨운 연애보다 토요일의 낮잠이 더 달콤할 때가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연애는 짜릿한 것이며, 홀로 되는 것은 처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이웃집 여자를 감금하고 사랑해달라며 애걸하는 외과의사가 주인공이다.
물론 동의한다. 그러나 때로 연애는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른 살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4년 가까이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져 첫 주말을 맞았었다. 이론상으론 혼자된 외로움에 고독이 몸부림치는 시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하루 종일 여유 있게 TV 시청을 즐겼고, 한 주 동안의 피로를 행복한 낮잠으로 풀어버렸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그녀와 연애를 한 4년 동안, 단 한 번도 주말을 나 혼자만을 위해 사용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연애라는 건 일종의 전속계약이다. 원하지 않아도 경기에 출장해야 하는 프로 야구 선수 같은 것이다. “오늘 우리 뭐할까?”라는 기대가 잔뜩 담겨 있는 상대의 목소리에 “나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쉴래”라고 말할 용기가 쉽사리 생기지 않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이 곪아가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 경기에 출장하는 이승엽 선수 같다고 할까. 오랜 연애가 끝난 자리에 비로소 유대인들의 안식년 같은 휴식이 찾아왔던 순간, ‘연애보다 더 행복한 것은 토요일의 낮잠’이라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로 상대를 괴롭히는 이들도 보기 드물다. 세대는 바뀌어도 여기엔 예외가 별로 없다.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연애에 있어 곧 의무와 책임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강요된 이상한 형태로. 흔히 지명 방어전이라고 부를 만큼 데이트의 횟수는 일정 기준치를 채워야 하고, 더불어 상대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통제하는 상황이 흔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라디오로 배달되는 많은 사연 중엔 아무리 연인관계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비일비재하다. 누구나 경험했을 만한 간단한 예론, 먼저 여자 친구의 옷차림에 간섭하는 남자. 이런 식이다. “너 나를 만나는 동안은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는 꿈도 꾸지 마라!” 요새 그런 남자들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보다 많다. 사연을 듣고, ‘제 남자 친구도 그래요’라는 동의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일반적인 예를 하나 더 들어본다. 술자리에서 자신이 연애 중임을 은연중에 알리는 이들이 있다. 멤버 중의 한 명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상대는 여자친구. “어,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있어.” 곧이어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곤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아니다. 돌아온 남자의 표정엔 잔뜩 짜증이 나있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늦은 술자리에 대한 여자 친구의 통제가 있었던 것을. ‘너 지금 몇 시인데 아직 집에 안 갔어!’라는 비난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의문이 생겼을 법 하다.

존 파울스의 ‘콜렉터’에는 짝사랑하는 여자를 지하실에 감금하는 엽기적인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이상심리가 섬뜩하게 담겨 있는 작품이다. 80년대에 나왔던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Boxing Helena)’라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좀 더 극단적이다. 여자를 자신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팔다리를 절단하는 장면까지 있으니 말이다. 문학과 영화의 과장된 내용에 야유를 보낼 수도 있지만, 정도의 순화가 있을 뿐, 사랑은 연애 단계에서 변질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신세대들의 연애 패턴을 살펴보다 경악했던 사실이 하나 있다. 상대에게 전달되는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애를 핑계로 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사건들까지 공개하도록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연애는 공포가 되어버린다.

핸드폰을 잠시 차에다 두고 저녁 식사를 하고 온 사이, 부재중 전화 30통이라는 액정 화면을 확인하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다. “너 지금 어디야? 핸드폰 카메라로 주변을 비춰봐”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다. 심지어 정말 집에 간 것인지를 알기 위해 집 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어보라고 하는 것은 모멸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이 사랑이고 연애의 방법론이라고 말한다. 토요일 오후, 혼자만의 낮잠이 무척이나 행복한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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