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주 이야기 (5) - 교동과 월드컵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9. 1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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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으면 문화도 없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이제 이 편지도 마지막이 되겠습니다.

'여행은 공부'란 말이 생각납니다.
얄팍한 마음속을 지닌 제게 무엇인들 교훈이 되지 않을 것이 없겠지만 전주의 풍성한 깊이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한 해가 또 시작되었습니다.
매서운 추위가 무심한 일상을 뒤흔들기에 충분할 정도입니다.
또 한 해의 많은 여백들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른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부디 이 겨울의 추위가 또다시 일상의 권태로움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추스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대략 1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전주의 흔적들은 시내 곳곳에 숨어 있을 테지만 그 중에서도 교동 쪽으로 가면 더더욱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동의 일그러진 한옥들을 바라보자면 '세월의 땟국물을 그저 뒤집어 쓰고만 있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사람이 숨쉬고 부대끼며 만들어 가지 않는 문화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향수일까요?

교동의 골목에 서면 비로소 내가 전주에 와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의 한옥 보존지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한옥 지구는 의례적인 조형물이 아니라 전주에 살던 범부들이 살았던 일상의 자취를 지녔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하지만 서울의 경복궁 옆 가회동이나 소격동에 가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자취에서 지역에서 산다는 것이 지닌 약간은 초라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전주시에서는 그 동안 800여 채의 전통 한옥이 밀집해 있는 교동과 풍남동 일대를 제4종 미관지구로 지정해 보존해 왔으나 주민들의 생활상 불편을 외면할 수 없어 한때 미관지구 지정을 해제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전통문화특구'로 지정한다고 하는 군요.

새로 전통문화특구로 지정된다면 군사정권 때처럼 일방적으로 증개축마저 허용하지 않던 것에서 변화되겠지요. 그래서 사람이 만들어가고 세월이 만들어 가는 톡특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길 기원해 봅니다. 인사동처럼 너무 돈냄새 나는 곳이 아닌 그야말로 '전주다운' 문화특구가 되길 바래봅니다.

교동 끝으로 가면, 즉 한벽루 쪽으로 가다보면 전주 향교가 있습니다.
전주 향교는 원래 고려 때부터 지금의 경기전 자리에 있었지만 세종 23년(1441) 경기전을 짓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하면서 이웃에 있는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요란하다 하여 전주부성 서쪽 화산의 동쪽 기슭으로 옮겼다가 임진란을 겪은 후 부중(府中)에서 너무 멀어 불편함으로 당시 관찰사 장만이 지금이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관립 중등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물론 조선 후기 서원의 융성으로 중등 관학 기관이 그리 성하지는 못했지만 성균관처럼 명륜당, 대성전, 계성사, 동무, 서무 등이 있고 공자와 유교 선현들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곳이었습니다.

전주 향교는 요즘도 한문 교육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향교 안의 은행나무는 전주 향교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전주는 오래되어 늙어버린 도시는 아닙니다.

조금 천천히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전라북도의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고 늘 싱그러운 젊음을 유지하려는 도시입니다.

그 예가 콩나물 국밥이 아닐까 합니다. 원래 국밥이라는 게 장터에서 먹던 것이었고 조선 시대부터 줄곧 있어 왔던 것이지만 그 나름의 맛을 개발하여 요사이 대한민국에 들어서도 전주 콩나물 국밥은 개성있는 음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전주 남부시장의 현대옥, 동문 사거리의 웽이집, 그리고 지금은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조금은 그 맛이 변한 삼백집등이 각기 다른 맛으로 경쟁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야 돌솥밥의 영양돌솥밥도 근래들어 개발한 음식이기도 합니다.

또한 전북대학교 앞의 분식 집에 가보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상추튀김이나 비빔만두 등을 팔고 있습니다. 이런 창의적인 음식문화는 '맛'에 대한 일가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늘 싱그럽게 변화하는 젊음을 가진 도시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전주에 대해 소개하지 못한 많은 곳곳들이 전주의 진면목으로 보여주겠지만 저의 못난 글솜씨로는 여기서 끝을 내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언제 시간이 나면 저도 콩나물 국밥에 모주 한 잔을 하며 그간 써온 곳들을 회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신 바로 당신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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