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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수 없는 환자

비회원 2005.09.23 15:10
요샌 수원 산부인과를 돌고 있다. 외과 때보다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일단 학교 선배가 하나도 없고 레지던트까지 전부 타교출신들이라 우리 학생들은 마치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들 끼리도 서로 뒤에서 욕이나 하고..하튼..이 곳은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안든다. 얼른 떠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나도 의사가 되어야 하기에 온갖 치사한 일을 감수하면서 개기고 있다. 학교 당국은 본교생이 산부인과를 지원 안한다고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이러한 로컬 부속병원 의 아주 x 같은 의국 분위기를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다. 나도 3일만에 산부인과는 제꼈으니까...

음..오늘 쓰고 싶은건 이게 아니고..-.-a..서론이 넘 길었군..

여기서 지겹게 시간 만 때우던 와중에 잊지 못할 환자를 만났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케이스 발표라는 것을 해야 한다. 환자를 한 명씩 맡아서 그 환자가 왜 병원에 왔는지 부터 시작해서, 검사결과, 처방내역, 상태 등등등 그야 말로 하나의 full story를 만들어 발표를 하는 것이다. 나에겐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가 배정이 되었다. 필리핀 환자였다.

첫날부터 1년차의 히스테리컬한 짜증을 받아내느라 상당히 피곤한 터라, 필리핀 환자가 배정이 되자 기운이 쭉 빠졌다. 진단명을 보니. FDIU(fetal death in uterus) 즉 자궁내 태아 사망 이었다. 이렇게 글로 표현 하니 좀 느낌이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를 35주 씩이나 임신해 오다가 분만에 임박해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마음은 오죽했겠으랴...

게다가 이 환자는 2주쯤 전에 외래에서 이미 preeclampsia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임신중독증을 뜻하는 말로써, 고혈압,부종,그리고 단백뇨 등의 증상을 보이며 원인은 비정상적인 혈관 반응 이라고 알려져 있다. 임신중독증은 태반 조기 박리를 일으켜 자궁내 태아 사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2주 전에 외래에서 임신 중독증 진단을 받았다면 즉시 입원을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다. 적어도 자궁내 태아 사망이라는 파국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

환자와의 인터뷰가 언어때문에 곤란하기도 하였고, 임신중독증과 태아사망에 대한 책을 읽느라 환자에게 갈 기회가 없었다. 어제 저녁 환자 차트 리뷰를 시작하였으나 아~주 부실한 adm note(입원기록) 가 나를 화나게 했다. 입원 당시 썼어야 했으나 내가 보기엔 그 후 여러가지 자신의 추측과 상상의 힘을 보태어 그리고 간호기록을 적절히 이용하여 메꿔 놓은 것 같았다. 어떻게 의사란 작자가 환자에 대해 나보다 더 모를 수가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 불성실한고 무책임임한 1년차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였다. 그랬더니 자기한테 물어보지 말고 환자한테 물어보라고 화를 내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건 고발감 아닌가..)

아주 혼동된 기분으로 로비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우리 환자를 보러갔다. 6인용 병실의 공기는 아주 습하였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내 환자..그녀의 이름은 바이노스다 36세, 한국말은 무지 서툴고 영어도 필리핀 식의 발음이라 그런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첨엔 다른 환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내가 학생인 것이 들키기 전에 후딱 해치우려고 준비해간 질문만 하였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시종 웃으면서 나와 대화를 했고,내가 와주어서 무척 고맙다는 표정을 짓고 탱큐를 연발하였다. 내가 의사인줄 알았었나...의사하고 얼마나 이야기가 하고 싶었으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국 만리에서.. 몸이 아파 말이 통하지도 않는 사람들속에서 누워있으려니 오죽 불안하고 답답했을까..

잠시후 그녀의 남편도 옆에서고 나와 이야기를 하였다. 준비해간 질문들 중 가장 하기 힘든 질문이 남았다 " 왜 임신중독증 진단을 받고 입원 하지 않았었는가..그때 입원을 했으면 아이는 살릴 수 있었는데.."

아..나는 어리석었다..너무 당연한 질문이었다.왜 몰랐을까...
당연히 COST!!!
그 필리핀 부부가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둘이 그래도 돈좀 모아보겠다고 한국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인데 말이다.

나의 환자 바이노스와 그녀의 남편은 눈물을 흘렸다.창문으론 저녁 햇살이 길게 들어오고 있었고 문 밖에선 보호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난 하얀색 가운을 입고 혼란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고...내 환자..바이노스..그녀는..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한..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며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을까...그녀의 눈에 비친 약간의 눈물로선 절대 알 수 없으리..

원래 학생은 환자한테 병의 예후나 치료등에 대해서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내 환자 ..바이노스..그 일반환자(알량한 특진환자 말고..)에게 누가 말이나 해주었을까..." 당신처럼 혈압이 높은 사람은 다음번 임신에도 반드시 아이를 잃게 될것이니 다음엔 빚을 져서라도 의사를 찾아가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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