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 & PDA

무식

알 수 없는 사용자 2005. 9. 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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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건 죄가 아니지만..의사가 무식하면 죄가 된다 했다. 요즘들어 딱 죄 짓고 사는 느낌이 든다.
교수님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질때면 차라리 쥐구멍으로 숨어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메스컴에서 건강상식이 보도 될때면..가끔씩(!!) 생소한 사실을 배우게 된다..-.-;;
예전엔 학년 올라가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라고 생각했으나..지금은 더 올라갈 학년도 없다..-.-

TV에서 나이 지긋한 의사 혹은 한의사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기를 많이 많이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

이때 나의 머릿속에선 다음과 같은 생각이 휘리릭 스쳐 지나간다.

""콜레스테롤이 뭐였더라..세포 인지질 이중층 사이에서 껴 있는 조그만 거였는데..그건 세포내 대사물질로 쓰이고 세포와세포 사이에 신호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는등 절대로 필요한 물질이다. 근데 그 신호전달의 구체적 사례와 기전등은 기억이 안나는 구나...아.. 동맥경화와 죽상경화의 차이는 뭐였더라..죽상경화가 더 작은 동맥이었다는 건 기억이 나는데..그게 세동맥이었는지 아니면 중동맥이었는지..그리고 콜레스테롤이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기전은?...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건 LDL(low density lipoprotein) 이었다..근데..apoprotein과 apolipoprotein의 차이는 뭐였더라..아 예전에 열라 햇갈려서 정리한 기억이 있는데..기억이 안나네...근데 고기를 많이 먹으면 왜 콜레스테롤이 높아질까..지방의 흡수경로를 이해해야 할텐데...책에 어디쯤 있는진 알겠지만.. 어렴풋이 밖에 기억이 안나네...동맥경화증의 위험인자는?...동맥경화증은 심근경색의 위험인자이던데...""

이러한 나의 생각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의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들이 봐도 너무나 보잘것 없는 지식이다. 아니..어제..동맥경화증과 지질 대사에 관한 시험을 치른 의대생이 나의 이러한 생각을 안다면 얼마나 한심스러워 할 것인가..
나 자신 조차 저번주에 레포트를 쓴 덕분에 현재.. "탈장"의 모든것에 대해 말할 수가 있으나..동맥경화증에 대해선 공부한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의대생들은 모든 "사실" 에대해 "근거"를 제시하도록 요구 받고..그렇게 훈련 받는다. 한의학이 경험중심의학이라면 서양의학은 근거 중심의학( evidence-based-medicine) 이라 할수 있겠다. 반드시 "이러이러하다" 가 아니라 "이러이러하므로 이러이러하다" 가 되어야 한다. 그 와중에 근거를 어디에 둘것인가..하는 고민이 생긴다.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아님 필기 내용?..아님..메뉴얼애 나와 있는 내용?..

그렇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그래도 가장 믿을 만한건 교과서 밖에 없다. 교수님들마다 설명이 다르고 메뉴얼마다 내용이 다르니 말이다.
그래서 의대생들은 질문에 답할때 "--입니다." 가 아니라 "--라고--책에 나와있습니다."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사실 " 고기를 많이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 " 는 말이 쉽게 들리기는 하나..그 근거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양의 책을 읽어야 한다.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훨씬더 위험하다 했으니..딱 죄를 짓는듯한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다가 하나도 못하는 상황이다. 시험땐 시험범위 내의 지식들은 어느정도 기억을 하지만 다음 시험을 위해서는 머리속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이러한 의대 교육 과정이 비록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쩌겠냐..
나중에 환자들은 얼굴에 진단명과 설명을 써서 오지는 않을진대...
이제 외워야 할것 같다..이해하고 책에다 줄긋고 넘어가는 시기는 끝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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