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Emergeny center - 힘든 동맥 채혈...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 24. 17:18
반응형
응급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악당들로부터 마을을 지키는
외로운 총잡이 처럼, 응급실을 지킨다.
응급실은 폭풍과도 같다. 환자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오고, 즉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여기저기로 뛰어다니는 응급실의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왠지 긴박하고, 스릴이 넘칠것만 같은 응급실에서
이번주 실습을 하였다.
나도 역시 청진기를 매고, 의사노릇을 한번 해봤다.

색다른 경험이었다.힘들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절실히 느꼈던건 공부 공부 또 공부 뿐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는 생각을 또 한번 확인했던 일주일이었다.

월요일 8시까지 여의도 성모 병원 응급의학 센터로 출근을 하였다. 8시부터 한시간 가량 회진을 돌고 컨퍼런스가 끝나니 10시 30분이었다.
환자가 많았다.
선생님들은 다들 무쟈게 바쁘신지 정신이 없었다.
흐흐..좋군..선생님들이 바쁘면 학생이 편해진다는
법칙이 있으니 말이야..
나와 내 친구 는 서로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러나..

갑자기 인턴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 선생, 저 환자 EKG 좀 찍어와요."
" 학생 선생님, 저환자 바이탈 체크좀 해주세요."
" OOO씨 ABGA좀 빨리 해주세요..!!!!"

"???"

"한번도 안해봤는데요..." 라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그들은 허겁지겁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이렇게 1주일이 시작되었다.......

격일로 당직을 서야하는데, 새벽 1-2시까지 근무를하고. 다음날 또 8시까지 출근을 하는 스케줄이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기 때문에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일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학생들도 해야할 일이 있다.
처음 온 환자들 EKG(심전도) 촬영하고, 바이탈 ( 혈압,맥박,체온) 측정하고, 그리고 동맥 채혈을 하는 일이다.


동맥 채혈...!!

무엇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동맥채혈이 아주 큰 부담이 되었다.
흔히 간호사들이 하는 채혈은 정맥에서 피를 뽑는 것이다.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정맥채혈은 쉽다.
ABGA( arterial blood gas analysis, 동맥혈 가스 분석) 을 위해선 동맥혈이 필요하다.
동맥은 정맥 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정확한 위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오로지 뛰는 맥박을 찾아서 정확히 그 지점에다가 주사를 꽂아야 한다.
게다가 무쟈게 아프다..진짜 아프다..조올라 아프다....ㅠㅠ.. radial artery( 손목을 지나가는 동맥 ) 에서 채혈을 해야 하는데 이 동맥은 뼈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자주 뼈를 긁기 때문이다.

동맥채혈은 " invasive procedure " ( 침습적 방법 - 정의 : 술기를 함에 있어서 환자의 death를 유발시킬 수 있는 위험한 술기.) 에 속하기 때문에 간호사가 할수 없다. 물론 동맥채혈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확률은 진짜 거의 없지만서도, 쩝...그래도 책에는 그렇게 나와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인턴 선생님들은 무쟈게 잘하신다.
흔히 그들을 표현하는 말로 " 주사기를 던지기만해도 꽂힌다.." 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긴 매일 수십개씩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힘든 일이었다.
크나큰 마음의 부담이 된다.
안 그래도 아프신 환자들에게 몇번씩 찔렀다 뺐다 하다보면 귀 밑까지 빨개진다.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분명히 맥박을 감지하고 60도 각도로 바늘을 찔러넣었는데..주사기에 피가 맺히지 않으면, 정말 당황스럽다..
예전에 다른과에서도 몇번 해보긴 해봤다.
그땐 항상 내 뒤에 인턴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든 뒷수습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여기엔 나 밖에 없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가 없었다.

보통 환자의 한쪽 팔에서 동맥을 찾아 2-3번 정도 찌르게 되면 동맥이 숨어버려 맥박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번에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2번째 찌를때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나 2번째도 실패 했을 경우 보호자들 기절하는 걸 보는 건 결코 유쾌하지가 않다.

진짜 장난아니다..
이게 뭐에욧..!! 당신 의사 맞아욧..!! 간호사 불러줘욧..!!
그러나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우리는 이런 경우에 본능적으로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지 알고 있나 보다.
일단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에..환자의 맥이 약하군요..다른 팔에서 한번 해 봅시다..가만히 좀 게세요..자꾸 움직이면 환자분만 아픕니다...보호자분 나가 주세요..방해됩니다.
이렇게 큰소리를 치고 환자의 다른 팔을 잡는다.
환자와 나 모두 불안하다..제길..
주사기에다가 나의 모든 기를 불어 넣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찔러넣는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피가 빨려나오게 되어 있다.
허나.진짜 엿같은 경우는 이때도 실패를 하는 것이다.
보호자가 심하게 소리를 지르면 나는 쫓겨나고.
인턴 선생님이 불려온다.
그러나 보호자가 덜 심하게 소리를 지를 경우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우리에겐 최후의 수단이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radial artery를 포기하고, femoral artery( 서혜부를 지나가는 동맥) 을 찌르는 것이다..femoral artery는 훨씬 더 굵고, 맥박도 더 힘차게 만져진다. 두 손가락에 딱 끼고 있으면 펄떡펄떡 뛰는데 눈으로 보일 정도이다. 그 뛰는 곳에다가 90도 각도로 바늘을 쑥 집어넣는다..진짜 깊이 집어넣어야 한다. 이때 겁을 먹으면 안된다..동맥이 뚫리는 감촉이 올때까지
집어넣게 되면,,반가운 피가 주사기로 뿜어져 나오게 된다..

그러나 환자의 프라이버시상 바지를 벗기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게다가 살찐 환자들은 오히려 radial artery가 쉽다..지방이 많기 때문에 종아리에서 맥박을 잡기가 힘들고 또 지방을 뚫고 동맥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젊은 여자들 바지를 벗길수는 없지 않은가?? 한번은 젊은 여자 바지를 벗겼다가 스타킹때문에 당황한 일이 있었다..그건 정말이지 나를 끝장내 버린 일종의 비극적 클라이막스였다.

그래서 초기엔 femoral artery를 주로 애용하다가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반드시 radial artery에서 성공시켜야 하는 환자들은 다음과 같다.

1. 살찐 아줌마들.
2. 젊은 여자 혹은 민감한 아줌마들.
3. 심장질환이 있는 환자들.

이중에서 3번만 책에 나와 있고, 나머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이런게 경험이다..책에서는 배울수 없는 것들을 좀 많이 배운건 같다..
그러나 이게 배우는 과정이라니..너무 힘든 것 같다.

이제 나만이 필살비법을 만들어내어
왠만해서는 radial artery에서 끝장을 볼 수가 있다.
제일 중요한건 동맥의 주행 방향을 파악하는 일이다.
두 손가락으로 맥박을 집어 주행 방행을 느낀 다음에 두 손가락 사이로 바늘을 찌른다.
그다음에 환자에게 가까운 쪽의 손가락을 때어 동맥이 펌핑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십중팔구 피가 나온다..그러나 이때 피가 나오지 않는다고 당황해서는 안된다.
피가 나오지 않게 만드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야 한다. 동맥을 뚫었나...비껴갔나....너무 얕게 찔렀나..등등..그리고 살살 잡아 당기면서 빼다보면 피가 나온다..그것도 아니면...주사기를 빙빙 돌려본다....

이제 " 던지기만 해도 들어간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잘 할 자신이 생겼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학생 치고는 참 잘한다.." 라는 칭찬까지 했다.

응급실에서 내 역할은 아주 미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환자들을 보며 때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제초제 먹고 밤새 신음하다가 결국 사망한 39살 남자 환자.그 가족들..
한강물에 빠져 응급실로 실려왔는데, 돈없고 가족도 없다고 병원비 못 낸다고 나한테 내보내 달라던 환자.
햄버거 먹고 쇼크를 일으킨 환자
술병에 맞고 머리가 깨져 온환자.
그리고 내가 바지 벗긴 여자 환자..

1주일의 짧은 실습기간이었지만 재미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응급실 실습에 있었던 제미있는 일을 앞으로 몇편 더 써볼 예정이다.
다음주에도 강남 성모병원 응급실 실습이니까 더 많은 일들이 생기겠지.


참고로 몇가지 경험을 더 보태자면...



예과1학년때 응급의학을 주제로 예일대병원응급센터 견학을 갔다왔는데 그 전에 우리대학병원에서 먼저 실습을 했다. EKG를 하기 위해서는 가슴에 전극을 붙어야하는데 29세 여자환자였다. 문제는 남편이 떡~허니 옆에서 지켜보는데 예과1학년이 환자의 가슴을 풀어헤치고 아무렇지 않은듯 턱턱~ 붙이기도 쉽지 않은데 이 남편왈.. '선생님 이건 무슨 검사인가요?'....'음...예...(버벅 버벅..) 심장이 잘 뛰나 보는겁니다 ㅜ.ㅜ' 그리고 미국에서 있었던 일...기다리던 TA(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다 백인 젊은여성이었다. 크게 다친것 같지 않았지만 다친 곳을 보기 위해 일단 가위로 옷을 다 제거하는 것이었다 ...'음....절대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극적인 경험이군 ㅡ,.ㅡ' (첨이었다 백인여성을 실제로 알몸을 본 것은...) 그런데 표정은 이래야 한다. 무척이나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탐구하는 표정... ER은 이래저래 어렵다...
반응형

'medical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의미함  (2) 2006.01.24
봄 햇살과도 같은 나의 후배들에게....  (1) 2006.01.24
좀 불공평하다..  (2) 2006.01.19
덤 앰 더머  (3) 2006.01.19
큰 실수를 했다  (2) 200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