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덤 앰 더머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 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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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41조 이다.
우리 41조는 A가 나고, B가 내 뒷번호인 ㅈ라는 남자 녀석이다.
결국 우리조는 2명이라는 말이다.

가톨릭 의과대학 실습 규정상 총 48주의 본원 실습기간중
우린 마이너과 (피부과, 안과 등 ) 실습을 제외하고는 항상 붙어다녀야 한다. 마이너과가 총 16주인데..그중에서도 5주는 같이 붙어다닌다.
결국 48주중에서 37주를 같이 붙어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 37주 중에서 절반정도는 달랑 1개조만 배치되기 때문에..
우리조 즉 우리 2명이서 실습을 도는 경우도 20주정도나 된다..

113명의 우리과는 모두 48개의 조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든조는 각각 A,B로 나뉘어 2명 혹은 3명씩
해당된다..

얼마전에서야 깨달은 거다...엘리베이터 안에서
ㅈ가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더니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ㅈ : " 야 요즘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
나 : " 뭔데 임마.."
ㅈ : " 우리조가 있잖아 우리과 모든 실습조중에서 젤루 푸어( poor ) 한거 같아.."
나 : " 무슨 소리야 "
ㅈ : " 생각해봐 임마..너랑 나랑 꼴지에서 기고 있잖아..아마 평균성적 내면은 우리가 꼴지일거야..단연코..."

우리는 잠시..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러고보니..
우린 어디를 가건..고생을 했다.
정말 다른조 모두 편안하게 도는 과들마저도
우리만 가게되면 왠지 분위기가 침울해지고..어두워지고..
선생님들도 짜증을 많이 부리신다..

심지어..파라다이스라 불리는 여기 방사선과에서도
우리 둘은 거의 맨날 이쁨도 못받고...
구박만 받았다..우리가 무슨 질문만 하면..
선생님들 모두 피식 웃으면서 대꾸도 안했다.

" 야 니들 공부에 관심없지 ? "
" 아침에 일찍 오는게 그냥 짜증나지? 그지 ? "
" 니들 커서 뭐가 댈래? "
" 얌마 저번주 애들은 얼마나 대답도 잘하고 그랬는데..니들은 맨날 뒷통수만 긁고 있냐 ? "

그랬다.

우린 " 덤앤 더머 " 였던 것이다.

예전에 우리에게도 다른 조 부럽지 않던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우리에겐 L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L..그녀는 본원 실습이 시작하기전 작년 5월부터 9월까지 외곽 병원 실습 시절..
우리 41 조였던 여학생이다.
그랬다.
외곽 병원에선 우리 모두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실습을 했던 것이다.
L은 선생님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질때...우리를 구해주던 구세주였다.

이제서야 L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멍청한 두 녀석들 달고 다니느라..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역시 사람의 소중함은 그 사람이 없어저서야 아는 가 싶다.

L은 우리가 10월달 부터 본원 실습 시작하면서..40조로 편입되어 벼렸다..40조원들이 대량 휴학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인원수가 많이 비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L과 해어지게 되고 나서부터
우리 둘은..바로..행복 끝 고생 시작이었다.

오늘 우리 덤앤 더머 또한번 대박을 터트렸다.

방사선과에선 오전에 교수님과 공부
오후에도 교수님과 공부를 한다.
옛날에 고삐리때 과외받는것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단 과외 선생님이 대학생이 아니라 교수님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이 차이점 하나가 분위기를 엄청 바꾼다..고삐리 때야 모르는게 당연하니까..선생님한테 당당히 요구를 할수 있다..

" 아씨..나 이거 몰라요..좀 잘좀 가르쳐봐요.."

그러나 교수님의 과외시간엔.
학생들은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안다는 가정하에
교수님과 discussion을 해야 한다.

물론 우린 1주일 내내 삽질만했다.
뭐..아는게 있어야지..

오늘 오전에 과장님의 과외시간이었다.
과장님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신후..
고개를 푹 숙이고...뒷통수만 긁고 있던 우리를
딱한듯이 쳐다 보셨다.

" 나는 말이야 니들처럼 피드백이 없는 인간들이 잴루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단 말이야...알았어?"

분위기가 일순간에 살벌해졌다.

" 야 니들은 공부를 왜 한다고 생각하냐 ? 너 부터 말해봐.."

교수님은 ㅈ를 가리켰다.

ㅈ는 대답했다.

" 먹고 살려구요...." ( 초롱초롱 한 ㅈ의 눈빛..다음에 벌어질 사태는 예상하지도 못하는 그 순수한 마음의 눈빛)

쿠쿵 ~~~~~
먹, 고, 살, 려, 고 !!!

교수님의 순수한 학문에의 열정을
감히 미천한 우리 학생이
단지.." 목구멈에 풀칠하기 위한 수단 "
으로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크헉..ㅠㅠ

' 헉...망했다..이런 바보..' 난 속으로 생각했고...

분노한 교수님은 나에게 물었다
" 그럼 넌 ?? "

" 아? 에..전..공부안하는데요...."

크헉..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이말이 교수님의 분노를 아예 우리에 대한 동정으로 바꾸어 버렸나 보다

" 얘들아..니들은 뛰어난 애들이야...우리학교 들어 올려면 얼마나 공부를 잘 해야 했겠니..너희 같은 우수한 인재를 이렇게 만든것은 다 학교의 책임이다..학교의 책임...."

우리는 너무 죄송해서..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1주일간 우리가 본 필름들에 대한 시험을 치르는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필름을 걸구..
한명씩 필름 판독을 시키셨다.

우린 공부를 못하긴 하지만..나름대로..열심히 하는 학생들이다. 이제껏 방탕하게 살았지만..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구 노력하는 학생들이다.
남들 6년동안 하는 공부..1년만에 끝내자는 각오로
요즘 국가고시 대비로 열심히 노력중인 학생들이다.
하지만...고생이 심하다...

우린 모두 자신 있었다.
1주일내내 판독실에 죽치고 앉아서..모든 필름을 완전히 읽었고..그 질환들에 대해 공부를 마친 상태였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
유창하게 판독을 하였다

" 에..또..우상복부에 보이는 이 종괴는 소아에서 호발하는 장 중첩증을 시사하는 강력한 소견으로써 공기 정복술을 시행한 다음 사진을 보면..종괴가 해소되었고 그 이하 장의 공기가 조영되는 소견이...."

ㅈ는 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고 있었다..

교수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 니들 지금 뭐하니..한놈은 필름 거꾸로 걸고 헛소리 하고 있고 옆에 놈은 그 헛소리를 전부 이해하고 있고...넌 참 좋겠다..너의 모든걸 이해해 주는 친구가 있어서..."

헉..필름이 왜 거꾸로 걸려 있지?

교수님도 기가 막히신듯 허허 웃으셨다.

그리고 그담에
더이상 시험을 진행하지 않으시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만 하다가 걍 나왔다.

병원 현관앞에서
ㅈ와 나는 담배를 때리며 동시에 생각했다.

" L이 그리워..ㅠㅠ "




오늘은 발렌타이 데이였다
여자친구 있는 애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그렇지 않은 애들이 대부분인 여기 여의도애서..
유독 우리 둘만 불쌍했다.
다른애들은 같은 조 여자애들이 챙겨 주었는데..
우리 둘을 챙겨줄 L은 없었다.

이래저래 L 생각을 많이 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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