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봄 햇살과도 같은 나의 후배들에게....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 24. 17:22
반응형
오늘 우리 학교 예과 1학년 녀석들의 "1일 병원 체험" 이 있었다. 본과 4학년들과 예과 1학년들이 짝을 지어, 하루 동안 병원 실습을 같이 도는 것이다.
의대 사회가 도제식 교육에 찌들어 엄격한 상하관계-혹은 주종관계적 분위기 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몇 해전 부터 의대내 교육의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온 의학교육학과의 개설과 더불어 이번 신입생 부터 처음으로 시행하는 제도 이다.

예과 2학년 녀석들만 해도, 가끔씩 맘에 안들 때가 있고, 혼도 내고 그러지만, 이제 막 새출발을 하는 신입생들은 우리에게 마냥 귀여울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주, 난 응급실 실습인지라..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도 힘에 부친 마당에 특별히 후배들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제 나의 1학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오늘 하루 히포크라테스의 새로운 후계자들과 하루를 함께하였다.

소설 닥터스의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 그대로 "그들은 fresh 했다." 아침 7시까지 응급실로 오라는 나의 말을 충실히 시행한 녀석은 넥타이와 가운이 어색한지 응급실 앞에서 뻘쭘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하루 , 발표준비를 하느라 잠을 거의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실습에 임했다. 더욱 열심히 환자도 보고, 땡땡이 안부리고 응급실 지키고, 그리고 1학년들에게 여러가지 병원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특히 오늘은 중국에서 발생환 " 괴질 " (SARS, severe aute respiratory syndrome ) 환자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우리 병원에 내원하는 바람에 다행히도 1학년에게 의사의 참 모습을 알려줄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재까지 원인 병원체나 감염 경로, 치료법 등이 밝혀지지 않는 이 괴질 환자는 병원에 들어서자 마자 격리 수용되었다. 지금까지 이 병에 걸려 죽은 사람의 반 수가 의료진이다..처음 이 병을 보고한 의사 역시 이 병으로 사망하였다. 마치 중세 시대의 페스트를 보는 것 과도 같은 느낌이었다.환자가 도착하자 마자 응급실의 의료진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였다. 그러나 마스크가 효과가 없음이 이미 밝혀졌기에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격리 병실에 접근하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

감염내과 교수님이 내려오셨다 덩치가 크고 눈매가 아주 날카로우신 교수님이다..특유의 정연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으로 환자의 치료 또한 교과서적 원칙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다..예전에 내과 실습을 돌적에 저런 완벽한 사람도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신 분이다..햇병아리 의대생인 우리에게 당시 교수님의 신속 정확하고 논리 정연한 판단과 시술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었다.

괴질 환자가 내원하였다. 감염내과 교수님이 내려오셨다. 나만 그렇게 느낀건줄은 몰라도..마치 인간와 죽음과의 싸움과도 같았다..의학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죽음과 대항해 끝까지 싸운다..교수님은 격리 병실에 들어가셨다..예전에 어느 내과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 진정한 감염 내과 의사의 죽음은 자기가 연구하던 세균에 감염되어 죽는 것입니다.나 또한 그럴 것입니다. 세균과의 전쟁에 지게 되는 날에는 인류의 미래 또한 없습니다.여러분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파수꾼 들입니다."

당시에는 교수님이 좀 오바한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그 교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의사라고 생각한다.
이 주제에 대해서도 1학년 녀석과 토론을 하였다.

초롱초롱한 눈매..
그건 지적 호기심이었다.
이제 막 의대에 입학하여 의대생이라는 실감이 나지도 않는 그들에게 의사가 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걸 일깨워 주는 것이 이번 행사의 목적이었다. 병실에서, 수술실에서, 응급실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직접 겪어 보면서 그들의 옆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책임과 의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그들도 알 수 있었으리라..

이번 행사가 이제 막 의대생으로 첫 걸음을 내 딛는 1학년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언제까지나 오늘, 그들이 보였던 열성과 성의, 그리고 간절한 염원 등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그들에게서 보았던 열정, 그 초롱초롱한 눈매를 배워, 다시 한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달은 하루였다.

내 후배들이 이글을 읽을리는 없겠지만..
오랜만에 선후배간에 돈독한 자리를 가지게 되어 기쁘다. 그리고 모교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더불어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가지 기억에 남는말이 있다.
오늘 내가 발표를 무사히 마친후 내 발표를 열심히 듣던 1학년이 이런말을 하였다.

" 오빠 마치 드라마 보는 것 같아요..근데 자막이 안뜨네요...^^ "

어느 참고서적 앞에 써져 있는 문구처럼..

인술과 의술을 겸비한 젊은 청년 의사 되어
인간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져
히포크라테스의
숭고한 계승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있어서 정말 의미있는 하루였다.
반응형

'medical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술..수술..수술의 끝없는 행렬..  (1) 2006.03.31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의미함  (2) 2006.01.24
Emergeny center - 힘든 동맥 채혈...  (1) 2006.01.24
좀 불공평하다..  (2) 2006.01.19
덤 앰 더머  (3) 200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