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응급실 그 두번째..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4. 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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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첫 번째 주를 벗어나지 못해 오늘도 어렵사리 저녁 7시에 응급실로 출근했다. 후배들.. 지나가며 형 웬일로 이 시간에 이렇게 깔끔해요..  " 응, 응급실이야. ㅡ.ㅡ!  지금 출근이다."

응급실 입구에 들어서면 많은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친구가 다쳐 안절부절못하는 청년, 가족에게 전화하는 부인, 할머니를 기다리는 소녀, 간병하다 지쳐 쓰러져 자는 아버지..
이들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오늘도 어쩌면 우울한 출발이 되었다. 물론 그런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2주차 녀석들 수고해요 라면 할 일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사라진다. 물론 나 외에 조원은 아직 없다.

주섬주섬 ABG, VBG tube를 챙겨 일을 시작한다. 몇 분이나 되었을까.. 나이를 지긋이 드신 분인데, VBG가 안 된다. 혈관을 찾으니 자꾸 도망간다. 벌써 2번이나 찔렀는데...

그때 보호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한쪽에서 혈관을 밀어줘야 해요. 혈관의 긴장이 떨어져서 그래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방긋 웃으며 말한다. "제가 간호사 출신이거든요. 지금은 그만 뒀지만요.^^"  

기분이 나빴을 만도 한데, VBG를 간신히 끝내자 저도 첨엔 그랬어요. 라며 웃는 것이 아닌가. 참 고마웠다. 화가 날만도 한데, 화를 내지 않고 미숙한 나를 위해 격려까지 해주다니...  

이렇게 오늘 오후의 일은 시작되었다. 시작이 좋은 걸까 아닐까? 망설임도 잠시 여기저기서 또 불러댄다. 빨리 해 주세요. 자꾸 밀리잖아요...  "예 "

시간이 흘러 지금은 새벽 3시 딱히 오늘은 소리치는 주정꾼도, MI 환자도, 심각한 교통사고 환자도 없다. 모두들 편안한 밤을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좋다.

한적함과 편안함도 잠시 새벽 5시 반쯤 되었을까.. 갑자기 A block쪽이 시끄럽다. 참고로 A block은 응급실 환자분 중에도 가장 심각한 분들이 계신 block 이다.  환자분중 한 분이 갑자기 vf(심실세동)가 걸렸다.

vf는 심장이 멈추기 직전의 운동으로 응급상황이다. 그렇다 CPR(심폐소생술)이 발생한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나보고 chest compression을 하란다.

발판 위에 올라 chest compression을 하는데, 갑자기 정신이 또렷해지며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환자 분의 심장소리와 내 심장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환자 분의 생명이 요동치는 소리이고 바로 그의 삶과 생명의 소리인 것 같았다. 이것이 생명을 다룬 다는 느낌일까. ...

결국 그분은 돌아 가셨지만, 내 손안에 그분의 온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분은 내게 짐을 지우고 가셨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어떤 무게를 느껴야 하는지 내 손에 쥐어 주고 가신 것이다.

무겁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 .의사의 길이다. 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순간이 내게 온다 하여도. 그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이 글을 빌어 지금은 고통 없는 세상에 계실 그분을 위해 명복을 빌고 싶다.

오늘은 글이 무거워졌네요.. 그냥 비가 와서 그런가 봅니다. ^^
비 오는 날에는 환자가 없다라는 말이 있죠.. "유비무환"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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