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 story

느림의 미학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 8. 16:24
반응형
제목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우리 의대생들은 언제나 주의 집중 - attention!!! 상태이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 ( 병원 안에서 )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학습실에 느긋하게 앉아 쉴때도 항상 뭔가에 대해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

병원에서는 자주 사소한 일들 때문에 당황하곤 한다.
아주 사소한 작업중 암환자들에게 항암제를 투여하는 작업이 있다.
약물을 말초에 있는 작은 혈관들로 주입하게 되면
항암제의 독성으로 인해 혈관의 괴사가 일어나 환자들은 어깨에있는 큰 중심동맥에
아예 하나의 관을 가지고 다닌다.

간단한 일이었다.
장갑끼고 주사기를 관에 연결하여 헤파린을 제거한뒤
다시 다른 주사기에 약물을 채우고 주입하면 된다.
그러나 바보가 된 것인지...몇번이고 실패하였다.

사고하는 능력이 마비된 듯 싶다.
어이없는 일이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간단해 보이는 일들이
나에게 있어서는 참 어려운 일이 된다.
그냥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배우지 않고서도 할수 있는 일인데..
어찌하여 나는 약물을 주입하고 헤파린을 제거하려 했단 말인가...( 순서 거꾸로..)

원인은 간단하다...
대부분..우리들은 " 실제적인 일" 과는 동떨어져서 지낸다.
우리에게 중요한건 심근경색의 위험인자이거나
2차성 고혈압의 병태생리,
항암제의 분류와 작용기전 등이다. 시험에 나오기 때문이다..
정작 병동에선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들이다..

정맥 채혈한다던지...아니면 좀더 난이도가 있는 동맥 채혈...
레빈 튜브 삽입...요도관 삽입...장갑끼는 법....
수액 이름 외우기...간단한 필름 소견 판독하기
등이 훠얼씬 더 중요해 보인다.
조금더 들자면...우리 병원의 약품코드나 약물 주입 용량 외우기...
컴퓨터로 처방 내는 법 배우기...
감기환자에게 쓰이는 단순한 처방 외우기...등등등

물론 우리는 감기환자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대부분 소염진통제와 해열제로 해결이 되고...
원칙상 모든 감기 환자는 감염병의 기준에 맞추어 혈액배양을 낸후...
배양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경험적 항생제를 투여한다.
그러나 대부분 바이러스성 감염이므로..
항생제 투여는 필요가 없고 보존적 치료로써 좋아질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염진통제에 NSAID가 있는 걸 알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상품명이라든지..
약품코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경험적 치료에 대해서는 연쇄상구균이나 녹농균에 대한 치료로서
3세대 세팔로스포린을 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나
역시 처방낼때 필요한 상품명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아니 적어도 나는..
아직도 선생님들끼리 대화하는 내용을 100% 이해할수가 없다.
그들은 서로 practical한 term을 사용해가며 대화를 하고
환자 차트에도 거의 약자나 아니면 약품코드로써 기록이 되어,
나는 그들의 앞에서 귀머거리, 까막눈이 된것만 같다.

너무나 쉬운 가장 기초적인 내용 이지만
나는 그들의 rationale를 이해할수가 없었다.
이런 사실..즉..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사실 때문에
언제부턴가 보든걸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선생님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주의깊게 듣는다.
그리구나서 그들의 행동을 관찰한다.
즉..." 아이톤 체크해!!!" 라는 말은 " 환자의 혈당치를 간단히 체크할수 있는 방법" 을 의미한다.
그리고 차트를 보고 우리병원 약전을 뒤져가면서
거기에 있는 약품코드를
교과서에 있는 내가 배운 성분명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기록되지 않은 행동이나 사고를 하는 건 약간 불안하다.

분명히 환자 가슴 CT를 봐야 하는데,
머리 MRI 걸어놓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글 맨 처음에 적었듯이..
항시 attention!!! 되어있어야 하는 나는
거의 항상 얼이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얼핏 본거 같기도 한데...
느림의 미학이라는 책을 본것 같다.
지금 책 이야기를 하려구 하는 건 아니고...

나야말로 느림의 미학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정말 의외의 사실이다..

나는 무슨일을 하건 간에..한번에 끝내지를 못한다..
예를들어...오늘 레포트를 써야 하는데..
아까 7시에 시작을 했는데..음악도 틀었다가 바꾸고.
전화도 하고...또 조금 쓰다가 인터넷 좀하고...책좀읽고...
텔레비젼도 보고...그러다가 내일로 미루었다.^^

나는 한가지 주제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면서 그 문제를 푸는걸 좋아한다.
수학문제 풀듯이 말이다.
근거들을 찾고, 논리적인 인과 관계를 찾고..(책이거나..아니면 내 생각이거나)
난 수학이랑 물리가 참 재미가 있었다.옛날부터..

이런 학습법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안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괴로웠다.
유급당하지 않기 위해서 정말 죽도록 하기 싫었던 " 아무생각 없는 암기" 를 했기 때문이다.
그것두 5년동안이다..암울했다.

요새는 그래도 좀 낳다.
시험도 없구.
실습만 돌아주고.나름대로 시간도 많이 남고..그렇다.
그래서 그동안 " 생각하지 못했던 " 것 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주로 의학적 지식들에 관해...

친구들이 보면 공부하는건지.뭐하는건지.모르겠다고 한다...
진도가 너무 더디기 때문이다.그러나 어찌하랴 이게 나의 스타일인 것을.
그래서..나는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한다.
많은 시간을 들여.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츰씩 공부가 재미있어 질라고 한다.^^

좋았어!!! 필 받았어~~~~~~~ ^^
반응형

'medical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 실수를 했다  (2) 2006.01.12
내과의 마지막날  (2) 2006.01.12
멋진 교수님  (3) 2006.01.08
비이성적인 것들에 대한 유감  (3) 2006.01.08
미생물 실습  (0) 200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