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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ta Arenas

그 옛날 배들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나들려면 남극반도와 남미대륙의 남단 사이 드레이크 해협을 통하지 않고는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엉성한 목선이 돛을 올려 바람을 타고 남극의 폭풍이 몰아치고 해류가 계곡의 급류처럼 빠른 이 거친 해협을 빠져나가는 건 목숨을 파도에 저당 잡히는 일이었다. 1520년 겁없는 모험가 마젤란은 대선단을 이끌고 대서양 연안으로 내려오다가 드레이크 해협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그 날 따라 파도는 미친 듯이 날뛰고 바람은 돛을 부러뜨릴 듯이 맹렬히 불어와 남미 대륙 끝에 널에 있는 섬 사이 안전한 곳으로 선단을 몰고 갔다. 강풍과 파도가 좀 누구러지면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겠다고 하구로 들어가 대피했다. 강이라고 생각했던 그 물줄기는 넓어졌다 좁아지며 계속 이어졌다. 자꾸 올라가던 ..

사는이야기 2007.03.05

자미두수

이 사람은 자기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제동을 걸고 짚고 넘어가는 타입으로 임기응변에 뛰어나고 아무리 급한 일도 여유부터 찾는 사람이다. 일에 앞서 일단 계산부터 꼼꼼하게 하고 이것저것 그려보며 따지는 스타일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더디지만 일만큼은 꼼꼼하고 마무리를 확실하게 하여 두 번 손대는 일이 드물다. 하지만 고집이 너무 세서 손해를 볼 때가 가끔 있고 속 깊은 말을 안 하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며 문제가 있을 때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는 형이라 좀 고독한 팔자라 하겠는데 어떤 때는 마음이 너그러운 것 같으면서 옹졸한 면이 있다. 대개 남에게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고 자존심은 센 편이라 일이 뜻대로 안 풀리면 고생이 많고 외로운 군자라 하겠는데 이런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해..

사는이야기 2007.02.24

아저씨...

마술가게가 아저씨가 되어간다는 증거는 곳곳에서 찾을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가슴 깊이 느끼게 되는 순간을 의외의 곳에서 발견했다. 굿바이 솔로에서 들었던 태진아의 동반자에 중독되고 비열한 거리에서 들었던 강진의 땡벌에 중독되고 우연히 듣게된 장윤정의 이따,이따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자신을 보고서 '아!저!씨!'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과연 나는 이제 부인할수 없는 아!저!씨! 란 말인가 ㅜ.ㅜ (3곡의 노래가 들어 있습니다)

음악 2007.02.11

해방

작년 12월24일! 아내와 함께 수도원에서 퇴회한 이후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정동 수도원의 성탄전야미사에 참석했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었고 얼마나 변했을지 그리고 얼마나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또 그런만큼 설레였다. 내 마음 어느 구석에는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지난 수도생활에 대한 미련 혹은 컴플렉스가 있었다. '수도생활에 실패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양했다. 수도자의 자질이 없는 인간이거나 인격 성숙이 안되었다거나 성적 갈망이 기준을 넘었다거나 등등 ..etc. 나는 수도원에서 왜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으레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라고 답을 하곤 했지만 그걸 듣는 사람이 내 말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이해했을지는 의문이다. 뜬금없이 왜 내가 정동수도원 성탄전야미사에 아내와 함께 갔을까..

사는이야기 2007.02.08

사랑하는 신부님

신부님 고마워요~! kwangseok 님의 말: 안녕! 잘갔어? 날씨가 싸늘하네 이 곳은. emergency medicine 님의 말: 네 비가오더니 많이 날씨가 많이 서늘해졌어요 kwangseok 님의 말: 남쪽도 그래? 계절이 항상 꺽여지듯 변하네. 계절도 고비가 있나봐. emergency medicine 님의 말: 개강 첫날이어서인지 그냥 피곤하네요.. kwangseok 님의 말: 그래? 사실 기분이 복잡하겠지. 얼마나 힘들겠어! OO이 wife가 좋아보여. 영리하고.. OO이랑 여러가지로 좋은일 많이 하겠어. 축복이니까 좋은일도 생각하라고. 난 부럽다니까. 힘들 것도 뻔한일이지만. wife에게 안부 전하고. emergency medicine 님의 말: 고마워요 신부님...마음을 다스리려고 차분히 ..

medical story 2007.01.18

사평역에서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

사는이야기 2007.01.16

미생물 실습

과학의 이미지하면 늘 이런 시험관의 이미지들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니 그닥 즐겁지 않다. 그냥 하라니 한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겠지. 내가 이런 기초과학을 재미없어하는 건 아마도 최소한 문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이런 류의 논의에 끼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잡다한 일들 쯤은 과학자들이 하고 그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좀 더 큰 패러다임을 잡아 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기초학문하는 사람들이 손발을 움직여 고생을 해주어야 내가 머리를 쓸 일이 생기지^^* ㅋㅋㅋ

medical story 2007.01.13

OSCE

우리 정민 마님이 OSCE(임상 수행 능력 평가 시험)시험 중이다. 잠시 시험장에 들러 TH-55군으로 한 컷 찍었다. 가끔씩 의대와 신학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가톨릭 신학부에서도 제일 윗학년은 거의 언제나 수단을 입고 있다 그들은 성직자인 부제이므로....그 밑 학년인 대학원1년차 혹은 2년차들도 성직자는 아니지만 시종직이나 독서직 수여자들이므로 수단을 입을 수 있고 전례(미사)가 아닌때에도 가끔씩 수업시간에도 입고 들어온다. 의대에서도 본과 3학년부터는 가운을 입는다. 아무래도 3학년보다는 4학년들이 가운을 입었을때 더 자연스럽다. 오늘 시험장을 보니 예전 신학부때 생각이 났다.

medical story 2007.01.13